강경대군 치사사건이 있은지 한달째가 되는 25일 서울
도심에서시위를 하던 성균관대생 김귀정양이 최루탄을 쏘며 진압작전을
펴던 경찰을 피해 달아나다 쓰러져 숨진 사건이 발생,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시국에 또 한차례 돌풍을 몰고 오지 않을가 우려되고 있다.
특히 경찰이 김양의 사인을 `단순 사고사''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는데
반해 동료 학생들과 재야에선 "당시의 정황등에 비춰 볼때 경찰의 시위
과잉진압이 결과적으로 김양을 숨지게 한 직.간접적인 요인"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어 벌써부터 이와관련된 논쟁이 가열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같은 분위기속에 검찰이 이번 사건의 심각성을 인식, 진상규명에
나서는 한편 이를 위한 부검까지 실시할 방침임을 천명하고 나서 그 귀추가
주목된다.
목격자들의 증언을 중심으로 당시 정황을 살펴보고 주요 쟁점을 짚어
본다.
목격자 증언
김양을 병원으로 옮긴 4명 가운데 한 사람인 김지훈군(21.공주사대
국민윤리4)은 " 대한극장과 퇴계로3가쪽 도로에서 동시에 전경들이
시위대를 압박해 들어와 이에 당황한 시위대 가운데 70여명이 진양상가옆
골목안으로 급히 대피했으나 그 앞길 마저 전경들이 가로 막고 서있어
대피그룹의 선두가 주춤거리는 사이 뒤따라 오던 또다른 시위대가
달려오던 탄력을 제어치 못하고 그 뒤를 밀어 붙였으며 이를 계기로
20여명의 시위학생들이 뒤섞여 길옆에 주차해 있던 봉고차와 엑셀승용차
주위에 포개져 넘어졌다"고 김양이 길바닥에 쓰러졌던 당시의 상황을
생생히 증언했다.
또 강성훈군(21.성균관대 중문4)은 26일 서울 중구 저동 백병원에서
있은 기자회견에서 " 김양은 경찰의 진압을 피하려다 시위대에 밀려
쓰러졌으며 전경들이 쓰러진 시위대들을 폭력적으로 진압했다"고 말했다.
강군은 또 " 당시 넘어진 학생들의 대부분은 여학생들이었는데
시위대가 쓰러진 후 전경들이 그 위로 올라가 3-4분동안 짓밟은 다음 길을
비켜주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들에 앞서 25일밤 백병원에서 당시 상황을 증언한 하정림양(19.덕성
여대 전산 1)은 " 전경들이 사과탄을 던지는 것과 동시에 방패와 곤봉으로
넘어진 시위대를 마구 때렸고 이때 뒷쪽에 있던 한 남학생이 `여학생
하나가 죽었다''고 외치는 소리가 들리자 이 소리를 들은 전경들이 슬며시
자리를 뜨는 사이 일어나 보니 김양이 바로 뒤에 실신해 있었다"고 말했다.
<> 경찰 조치
김양이 숨진후 관할 중부경찰서가 서울시경에 올린 보고서에 따르면
경찰이 김양의 사망사실을 안 것은 김양이 숨진지 40분이 지난
하오6시10분께로 돼있다.
이러한 사실은 백병원 원무과 직원이 경찰서 상황실로 전화를 해서
경찰이 비로소 알게 됐으며 하오6시30분께 중부경찰서 정보과장이
백병원에 도착, 시신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목격자들의 증언대로라면 당시 현장에 있던 전경들은 김양등 길바닥에
쓰러진 시위대를 구타하다 `여학생이 죽었다''는 소리를 듣고서도 실신한
김양을 그대로 방치 했음은 물론, 지휘관에게 보고조차 하지 않았다는
얘기가 된다.
경찰은 병원측으로 부터 신고를 받고 나서야 김양이 숨진 현장에
수사진을 보내 상황을 파악한뒤 `변사자 발생보고서''를 작성, "
시위대원들이 진양상가쪽 길목 입구로 도주하면서 봉고차와 부딪쳐
20여명이 넘어졌으며 그중 김양이 제일 밑에 깔려 의식을 잃었다"고
밝혔다.
이 보고서에는 "현장에서 진압경찰이 쓰러진 시위대원들을 마구
구타하는등 과잉진압을 했다"고 목격자들이 말한것과는 대조적으로
이러한 부분이 한마디도 언급 되어 있지 않았으며 `김양이 시위대에 깔려
숨졌다''는 지극히 피상적이고 단순한내용만 담겨 있었다.
이와 관련, 경찰 관계자는 " 이 보고서는 정황보고를 근거로해
작성됐으며 보고서 작성을 위해 어떤 일정한 목격자를 상대로 조서를 받은
적은 없다" 고 밝히고 있어 목격자 진술이 없는 `유령보고서''가 아니냐는
지적을 받고 있다.
<> 쟁점
경찰이 김양사망을 `사고사''의 시각으로 보는 것과는 달리
범국민대책회의는 "김양사망은 경찰의 과잉진압과정에서 일어난것으로
엄밀한 의미에서 폭력살인사건"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대책회의측은 또 "김양사망의 직접적 원인이 경찰의 곤봉구타와 최루탄
난사 때문이라는 사실은 여러 목격자들에 의해 확인된 것"이라며
"시위대끼리의 자체사고라는 경찰 주장은 거짓"이라고 지적했다.
대책회의 관계자들을 중심으로해 구성된 `김양 폭력살인
임시진상조사반''은 <>김양 시신의 무릎과 발 주위에 난 상처가 경찰의
구타에 의한 것으로 보이고 <>사고현장에 최루탄 파편과
머리핀,신발등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으며 <>이날 비가 많이 내려 경찰이
평소보다 많은 양의 최루탄을 발사했고 <> 현장에 있던 다른 시위
참가자가 최루가스때문에 구토를 하고 얼굴에 수포가 생기는 등의 곤욕을
치렀다는 점을 내세우며 " 김양은 시위대에 밀려 쓰러진 다음 뒷따라
행해진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인해 최루가스에 질식, 숨진 것으로 보인다"
고 강조했다.
김양의 사인이 단순히 `시위대밑에 깔린데서 빚어진 압사''라는 경찰의
시각은 몇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것이 진상조사반의 주장이다.
진상조사반은 "목격자들의 증언처럼 무더기로 쓰러진 시위대에 대해
전경들이 최루탄을 쏘고 마구 짓밟으며 곤봉을 휘두르는 상황을 가정해
볼때 김양이 길에 엎 어진 다음 뒤이어 쓰러진 시위대에 깔린뒤 경찰의
구타등 폭력적인 현장제압이 없었다면 밑에 깔린 시간이 짧아 금방
일어설수 있었을 것" 이란 견해를 폈다.
이 문제에 대해 강남성모병원 내과의 한동운씨(34)는 " 사람들에 의해
깔려 죽는, 이른바 압사의 경우 자기 몸무게의 5-6배나 되는 힘이
가해졌다 해도 그 상태가 평온할 경우 그것만으로는 사망원인이 될 수
없다" 면서 " 엎어진 상태에서 위로부터 가슴이나 복부등 특정부위에
순간적으로 큰 충격이 가해지게 되면 그것이 오히려 사망을 초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앞서 제시된 진상조사반의 주장이 설득력을 지닐려면 김양의
시신에서 왼쪽 무릎과 광대뼈 부위 피멍외에는 별다른 외상이 발견되지
않은 점 등에 대한보다 분명한 근거제시가 있어야 할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숨진 현장이 폐쇄된 공간이 아니라는 점 또한
`최루가스에 의한 질식사''를 부정케 하는 논거이다.
이렇게 볼때 김양이 깔리자 마자 숨졌는지 아니면 전경들의 과잉진압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숨졌는지를 가려 내는 것도 이번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주요 요체라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