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결식장에서 살풀이 춤인 ''열사부활굿''을 춘 민예총산하 서노문협
노동예술분과위원장 김경란씨(36)가 올라탄 4평 크기의 목제 춤판이
상오 11시 35분께 교문을 빠져나가 신촌로타리로 향한뒤 명지대학생들이
마지막으로 나갈때까지 걸린 시간은 무려 50분.
약 5백m의 운구행렬은 민예총 문화패들이 앞장을 서고 뒤에 영정,관
유족등이 선뒤 각종 구호들이 적힌 5백여개의 만장이 그 뒤를 이었다.
이 행렬로 일대 교통이 두절되자 구경하던 부근 주민과 학생들이
시위대를따라 구호를 외치거나 간간이 박수를 치기도.
장례준비위측은 워키토키를 휴대하고 선두와 후미간에 서로 연락을
취하며 행렬의 질서를 유지.
명지대생 5백여명은 한결같이 흰색바탕에 강경대군 얼굴이 그려져
있고"강경대는 싸우고 있다"는 글이 적힌 티셔츠를 입고 각목을 휴대한채
대형을 유지하면서 행렬의 진행에 장애가 되는 시민들에게 간혹"조금만
물러서 주십시오"라고 정중히 요구.
장례행렬을 따라나선 학생 및 재야단체 회원들은 ''강군 추모비
건립기금 모금함''이라고 적힌 종이상자 50여개를 들고 나와 행진도중
구경하는 시민들에게 기부를 요청했다.
이 행렬을 지켜보던 김모씨(47.서울서대문구남가좌동)는 기부금을 낸뒤
부근 가게에서 목장갑 한다발을 사와 학생들에게 나눠 주며 "여러분의
의로운 싸움에 마음으로 동조하고 싶다"고 격려.
''열사부활굿''을 끝으로 명지대 교정을 나선 운구행렬은 연도에 늘어선
시민들의 애도속에 6인 열사합동추모제가 열리는 연세대로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
풍물패를 앞세운 강군의 유해가 학생들의 호위속에 교문앞을 가득메운
인파를 해치고 서서히 연세대로 향하자 장례행렬을 지켜보던 부녀자들은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기도.
운구행렬은 서울1두7515호 검은색 승용차의 선도 아래 20여명의
학생호위대,대형태극기, 강군의 대형영정을 실은 트럭이 줄을 잇고
태극기와 국화에 싸인 강군의 유해가 뒤를 따랐다.
낮12시10분께 강군의 운구행렬이 명지대 정문에서 7km 가량 떨어진
홍남교 부근에 이르자 경찰은 당초 약속과 달리 전경 4개중대 5백여명의
병력으로 노태우대통령과 전두환 전대통령의 사저가 있는 연희동쪽으로
가는 길목을 완전 봉쇄,장례행렬이 그 자리에 머무른채 연좌농성.
장례위원회측은" 죽은 사람의 가는 길을 추모하지는 못할 망정 전경을
동원해 가로막는 도덕도 인륜도 없는 이같은 정권이 세상에 어디 있느냐"며
10여차례 길을 열어줄 것을 요구했으나 경찰은 요지부동.
경찰은 운구대열의 학생,시민등 7천여명이 강력하게 반발하자 이들을
향해 사과탄을 던지고 곤봉으로 마구때려 한때 험악한 분위기를
조성하기도.
낮 12시15분께 대열의 선두에선 김대중신민당총재등 국회의원 일행이
경찰에게 길을 비켜줄 것을 호소하던중 갑자기 사과탄 5-6개가 경찰쪽에서
날아오는 바람에 김총재일행이 최루탄을 뒤집어 쓰기도해 연도에 늘어선
시민들의 야유를 받았다.
학생들은 운구행렬이 경찰의 저지로 움직이지 못하자 도로에 주저 앉아
"노태우 타도"등을 외치며 항의농성을 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