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대 김영균군 분신 31시간만에 숨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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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낮12시25분께 안동시 송천동 안동대에서 고강경대군 추모식에
참석해 "공안정부 퇴진"등을 요구하며 분신자살을 기도, 경북대병원에
옮겨져 치료받던 안동대 김영균군(20.민속학2년)이 사건발생 31시간45분만인
2일 하오8시10분께 끝내 숨졌다.
김군이 숨질 당시 화상응급실에는 아버지 김원태씨(53)와 어머니
박옥숙씨(45),학생 10여명과 의료진들이 지켜보고 있었으며 어머니 박씨는
불경을 읽으며 아들의 완쾌를 빌고 있었다.
김군을 치료했던 성형외과 백봉수과장은 직접사인이 심폐부전이며 2일
하오8시10분께 숨을 거뒀다며 밝혔다.
병원측은 김군이 숨진 직후 사체를 병실에서 50m가량 떨어진 영안실로
옮겼다.
<>사건발생
김군은 지난 1일 낮 12시25분께 안동대 교양학관 앞에서 열린 강경대군
추모식장에서 1백50m떨어진 교양학관 뒷편에서 온몸에 시너를 뿌리고
불붙여 고함을 치면서 행사장으로 달려가는 것을 학생과직원
유재근씨(45)와 학생등 4명이 소화기로 불을 끄고 안동병원으로 옮겨져
응급치료를 받은후 이날 하오1시께 경북대의대부속병원으로 옮겨졌었다.
<>치료과정
경북대병원측은 김군을 화상병동 301호실로 옮겨 성형외과
백봉수과장(55)을 주치의로 5명의 의료진을 구성, 기관지확장을 위한
응급수술을 실시하는 한편 화상환자에게 가장 중요한 수액요법치료를
집중해 의식을 잃었던 김군이 1일 하오 9시께 잠시 의식을 회복해 서울서
달려온 부모들과 수화로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그러나 김군은 2일 상오 5시부터 심폐기능이 약화되면서 숨을
거둘때까지 인공 호흡기로 산소를 공급받았다.
김군은 숨질때까지 의료진에 의해 3차례에 걸쳐 심폐소생진료를
받았으며 이날 하오 5시55분께는 잠시 심장이 멎어 응급실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학생들에 의해 숨진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으나 의사들의
인공호흡실시로 심장이 다시 박동하다 2시간 조금지나 숨을 거뒀다.
<>장례
김군의 아버지 김원태씨(53.서울시청직원)는 김군의 사체가 안치된
영안실에서 이날 하오 9시30분께 영안실 관리직원에게 가족장으로 4일
장례식을 실시하겠다고 밝히고 장례준비를 부탁했다.
김군의 사체를 지키고 있는 2백여명의 학생들은 현재까지 장례절차에
대해 밝히지 않고 있어 가족들과 장례문제를 둘러싸고 마찰이 예상되고
있다.
<>영안실 주변
학생들은 영안실에 분향소를 설치한 가운데 안팎에 2백여명이
쇠파이프와 몽둥이를 들고 김군 가족외에 외부인의 출입을 일체 막고
있다.
이날 하오 9시께 고박종철군 아버지 박정기씨(62)가 영안실에 도착해
학생들에게 "대학생들이 똘똘뭉쳐 현재의 군사문화를 해체시키고 공안통치
종식을 위해 투쟁 해달라"고 당부했다.
김군의 사체가 안치된 영안실에는 6구의 사체가 안치돼 있어 다른
문상객들이 들어가려 해도 학생들이 통제해 시비를 벌이기도 했다.
영안실주변에는 보도진 20여명이 몰려들어 취재경쟁을 벌이고 있으나
안으로는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학생 움직임
지난 1일에 이어 2일 하오 6시부터 대구.경북지역 대학생 1천5백여명은
김군이 치료받고 있는 경대부속병원 화상병동앞에 모여 "백골단해체"
"현정권타도"타도 등의 구호를 외치며 농성을 벌였다.
학생들은 화상병동의 1.2.3층 복도입구에 20여명씩 조를 짜 외부인의
출입을 막았다.
학생들은 하오 8시10분께 김군이 숨졌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울음을
터뜨리며 경병원앞 2차선도로로 자리를 옮겨 "김군 분신사건
진상보고대회"를 가진뒤 "현정권을 분쇄하자"는 등의 구호를 외치며
철야농성에 들어갔다.
<>경찰대책
경찰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 대구시경소속 경찰 11개중대 1천5백여명을
병원주변에 배치했다.
경찰은 학생들이 폭력을 행사하지 않을 경우 최루탄을 쏘지 않을
방침을 세우고 학생들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다.
참석해 "공안정부 퇴진"등을 요구하며 분신자살을 기도, 경북대병원에
옮겨져 치료받던 안동대 김영균군(20.민속학2년)이 사건발생 31시간45분만인
2일 하오8시10분께 끝내 숨졌다.
김군이 숨질 당시 화상응급실에는 아버지 김원태씨(53)와 어머니
박옥숙씨(45),학생 10여명과 의료진들이 지켜보고 있었으며 어머니 박씨는
불경을 읽으며 아들의 완쾌를 빌고 있었다.
김군을 치료했던 성형외과 백봉수과장은 직접사인이 심폐부전이며 2일
하오8시10분께 숨을 거뒀다며 밝혔다.
병원측은 김군이 숨진 직후 사체를 병실에서 50m가량 떨어진 영안실로
옮겼다.
<>사건발생
김군은 지난 1일 낮 12시25분께 안동대 교양학관 앞에서 열린 강경대군
추모식장에서 1백50m떨어진 교양학관 뒷편에서 온몸에 시너를 뿌리고
불붙여 고함을 치면서 행사장으로 달려가는 것을 학생과직원
유재근씨(45)와 학생등 4명이 소화기로 불을 끄고 안동병원으로 옮겨져
응급치료를 받은후 이날 하오1시께 경북대의대부속병원으로 옮겨졌었다.
<>치료과정
경북대병원측은 김군을 화상병동 301호실로 옮겨 성형외과
백봉수과장(55)을 주치의로 5명의 의료진을 구성, 기관지확장을 위한
응급수술을 실시하는 한편 화상환자에게 가장 중요한 수액요법치료를
집중해 의식을 잃었던 김군이 1일 하오 9시께 잠시 의식을 회복해 서울서
달려온 부모들과 수화로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그러나 김군은 2일 상오 5시부터 심폐기능이 약화되면서 숨을
거둘때까지 인공 호흡기로 산소를 공급받았다.
김군은 숨질때까지 의료진에 의해 3차례에 걸쳐 심폐소생진료를
받았으며 이날 하오 5시55분께는 잠시 심장이 멎어 응급실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학생들에 의해 숨진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으나 의사들의
인공호흡실시로 심장이 다시 박동하다 2시간 조금지나 숨을 거뒀다.
<>장례
김군의 아버지 김원태씨(53.서울시청직원)는 김군의 사체가 안치된
영안실에서 이날 하오 9시30분께 영안실 관리직원에게 가족장으로 4일
장례식을 실시하겠다고 밝히고 장례준비를 부탁했다.
김군의 사체를 지키고 있는 2백여명의 학생들은 현재까지 장례절차에
대해 밝히지 않고 있어 가족들과 장례문제를 둘러싸고 마찰이 예상되고
있다.
<>영안실 주변
학생들은 영안실에 분향소를 설치한 가운데 안팎에 2백여명이
쇠파이프와 몽둥이를 들고 김군 가족외에 외부인의 출입을 일체 막고
있다.
이날 하오 9시께 고박종철군 아버지 박정기씨(62)가 영안실에 도착해
학생들에게 "대학생들이 똘똘뭉쳐 현재의 군사문화를 해체시키고 공안통치
종식을 위해 투쟁 해달라"고 당부했다.
김군의 사체가 안치된 영안실에는 6구의 사체가 안치돼 있어 다른
문상객들이 들어가려 해도 학생들이 통제해 시비를 벌이기도 했다.
영안실주변에는 보도진 20여명이 몰려들어 취재경쟁을 벌이고 있으나
안으로는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학생 움직임
지난 1일에 이어 2일 하오 6시부터 대구.경북지역 대학생 1천5백여명은
김군이 치료받고 있는 경대부속병원 화상병동앞에 모여 "백골단해체"
"현정권타도"타도 등의 구호를 외치며 농성을 벌였다.
학생들은 화상병동의 1.2.3층 복도입구에 20여명씩 조를 짜 외부인의
출입을 막았다.
학생들은 하오 8시10분께 김군이 숨졌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울음을
터뜨리며 경병원앞 2차선도로로 자리를 옮겨 "김군 분신사건
진상보고대회"를 가진뒤 "현정권을 분쇄하자"는 등의 구호를 외치며
철야농성에 들어갔다.
<>경찰대책
경찰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 대구시경소속 경찰 11개중대 1천5백여명을
병원주변에 배치했다.
경찰은 학생들이 폭력을 행사하지 않을 경우 최루탄을 쏘지 않을
방침을 세우고 학생들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