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4월 연수원에 들어가기 전에 고국을 한번 방문해 보고 싶었읍니다."
재일교포와 신체 불구자라는 이중의 난관을 극복하고 일본의 사법시험에
합격,화제를 뿌렸던 백승호씨(29.오키나와현 기노완시)가 설날인 15일 하오
2시55분 JAL 171편으로 귀국했다.
백씨는 오는 24일까지 서울에 살고 있는 외삼촌 김 준씨(46.양천구 목3동
할렐루야교회 담임목사) 집에 머무르면서 21일 KBS `11시에 만납시다''프로
녹화, 21일 이후로 잡혀 있는 청와대 초청 방문 등의 일정 외에는 "고국을
더 잘 알기 위한" 국내 관광을 즐길 예정이다.
유창한 한국말 솜씨와 검정색 싱글 양복 차림의 평범한 외양으로 오른
팔이 없는 점을 제외하고는 여느 청년의 모습과 다를 바없는 백씨에게서는
차별받는 재일교포로서 그 어려운 사법 시험을 통과했다는 우쭐함과 자만심
대신에 고국에서 쏟는 커다란 관심에 다소 멋적어하기까지 하는 순박함과
소탈함이 묻어 나오는 듯 했다.
*** "재일교포 법적지위 향상 위해 노력할 터" ***
"이번 사시에 재일교포 6명이 합격했고 그중에는 여자도 한명이 끼어
있는데 혼자만 주목받는 것 같아 부담스럽기까지 하다"며 그간의 관심과
`찬사''에 쑥쓰러워하는 백씨는 앞으로 변호사의 길을 택해 현재 한일간에
해묵은 과제로 남아 있는 재일교포의 법적 지위 향상에 노력하는 한편
북한과 일본의 관계도 연구, 통일후 국제법상의 문제가 발생할 경우 문제
해결에 미력이나마 기여하겠다는 꿈을 간직하고 있다.
백씨가 변호사를 택한 것은 6살 때 교통사고로 오른팔을 절단해야 했던
신체적인 결함으로 정신노동이 가장 적합하다는 점과 일본 내에서도 비교적
높은 보수와 자유직업으로 인기가 좋다는 현실적인 이유 이외에 무엇보다도
한국인 국적으로는 검사와 판사가 될 수 없는 엄연한 장벽 때문.
비교적 대범한 성격과 오키나와라는 지역적 특성으로 이같은 장벽을 심하게
느끼지 못한 백씨이지만 재일교포 청년들이 일반 회사 취직 시험에서
필기에 합격하고서도 면접에서 떨어지는 사례가 비일비재하고 중앙 정부
공무원 자리는 생각지도 못하며 단지 지방 자치 정부 차원에서만 외국인
고용문제가 논의되고있는 현실을 누구못지 않게 잘 알고 있다.
백씨는 또 동생 승주양(23.법률사무소 근무)이 대학을 졸업하고서도
"한국인이면 한국인 회사에 가라"는 거절 때문에 결국 아는 사람의 소개로
어렵사리 취직했을때 말로만 듣던 한국인 차별을 피부로 느끼기도 했다.
백씨는 사법시험 합격이 "이제 조그마한 하나의 시작일 뿐"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동안 어머니 김우희씨(53.요리사)와 동생이 겪었던 마음
고생을 떠올리면 앞으로 어떠한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좌절하지않고 매사에
최선을 다해 기대에 어긋나지 말아야겠다는 각오가 새로워진다고 말한다.
칠전팔기라는 말 그대로 8년만에 시험에 합격한 백씨는 "떨어질 때마다
나는 괜찮았지만 옆에서 지켜보는 어머니와 동생이 더 괴로워 해 무척
죄송했다"며 "변호사만이 나의 천직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모든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 같다"고 그간의 어려워던 시절을 회상했다.
고국에 머무르는 10일간의 일정 중 백씨가 가장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은
어렸을때 입에 대보고 그동안 맛보지 못한 순대를 먹어보는 것.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음식으로 순대를 서슴없이 손꼽는 백씨는 그 맛을
잊지못해 일본에서 떠나올 때 "유명하다고 소문난 종로 모 한식집" 위치까지
알아올 정도로 무척이나 기대가 크다.
백씨는 곧 대하게 될 고국의 맛에 대한 기대와 함께 앞으로 인생의
반려자가 될 배필을 구하는 데도 설레임이 크다.
"국제 변호사로 활동하고 싶어 아내도 일어,영어,한국어에 능통했으면
좋겠다"는 백씨는 "너무 까다로운 조건을 내건것 아니냐"며 계면쩍은 웃음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