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광주특위는 20일 김옥길(당시 문교장관), 유병현(당시 합참의장),
최웅(당시 11공수여단장), 권승만씨(당시 7공수33대대장)등 3명을 중심으로
출석시킨 가운데 청문회를 열고 광주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신문을 계
속한다.
이에 앞서 특위는 19일 이희성(당시 계엄사령관), 소준열씨(당시 전남북
계엄분소장)를 출석시켜 신문을 벌였다.
이날 청문회에서 소씨는 증언을 통해 "광주의 전남도청 최후 진압작전에서
사망한 수는 도청13명, 전일빌딩 3명, 사직공원 1명등 모두 17명"이라고 말
하고 "17명외에 더이상의 사망자는 없으며 사태수습후 신문광고등을통한 사
망자신고에 최선을 다했기때문에 더이상의 사망자는 없을 것으로 믿는다"고
증언했다.
소씨는 5월27일 자정에서부터 광주사태 진압에 관한 모든 재량과 권한은
모두 전교사사령관인 본인에게 위임됐으며 따라서 진압작전의 모든 책임은
본인에게 있다"고 말하고 "광주지역의 작전권을 인수한 22일이후 대화를 통
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시민의 요구사항을 다 들어줬으나
시민군이 무리한 요구조건을 내세우고 시민군을 훈련시키는가 하면 강경파
들이 장악해 이시기를 놓치면 작전이 어려워질것으로 판단했고 80만 광주시
민을 구하기 위해 진압작전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소씨는 이어 광주에서의 지휘권행사에 대해 "지휘권을 인수한 이후 광주
에 있는 모든 부대에 대해 지휘통솔을 했으며 작전권의 이원화현상은 전혀
없었다"고 말하고 "다만 정호용특전사령관과는 공수부대를 외곽으로 뽑을때
와 도청진입에 필요한 특공조를 선발할때 상의했으며 정사령관은 무력진압
작전에 대한 설명을 듣고 그렇게 하는것이 좋겠다.3공수를 특공조로 활용하
는 것이 좋겠다고 말한 사실은 있다"고 정사령관의 조언을 얻었음을 시인했
다.
소씨는 그러나 당시 보안사소속 장성 한사람이 현장에 나와 지시한 사람이
있는데 그가 누구냐는 야당의원 질문에 당시 보안사 기획조정처장인 최예섭
준장이었다고 밝히고 "최준장과는 서너번 만났으나 특수한 임무를 띠고 왔
기때문에 특별한 얘기는 없었다"고 말해 광주사태 진압작전수립및 집행과정
에서 전두환사령관을 지휘체계로 한 보안사의 간여가 있지 않았나하는 가능
성을 시사했다.
소씨는 또 "정사령관이 광주를 방문했을때 몇차례 장세동특전사작전참모를
대동한 사실이 있다"고 말했다.
소씨는 "광주에 파견된 공수부대의 가두시위 진압명령은 정웅31사단장에
의한것"이라고 말하고 "정사단장으로부터 작전권을 박탈했다는 주장은 사실
이 아니며 정단장은 최종진압작전때까지도 31사단에 대한 작전지휘권을 계
속 행사했다"고 광주사태 초기에 작전권을 박탈당했다는 정사단장과 야당의
원들의 주장을 부인했다.
소씨는 "도청안에 적색분자가 있었으며 독침사건은 적색분자의 소행이라
고 했고 민간사망자가운데 M16소총에 의해 사망한 사람은 43명이라고 한 자
신의 민화위발언은 잘못된 것이라고 시인하고 확인한 결과 M16소총에 의해
사망한 사람은 98명이라고 정정하고 "5월24일 하오 광주외곽에서 전교사 교
도대와 공수부대간의 오인사격으로 인한 충돌로 무고한 병력이 사망했으며
이는 무능한 지휘관의 책임"이라고 잘못을 시인했다.
소씨는 광주사태의 원인에 대해 "사태의 확산과 악화는 공수부대의 과격
행위에 원인이 있다"며 "그러나 학생들의 과격행동도 원인이 됐으며 동과
반동의 원리가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이에 앞서 이희성씨는 "5.17계엄확대조치와 동시에 이루어진 시위주동학
생과 정치지도자연행은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지휘한 합동수사본부에서 계획
집행한 것"이라고 5.18에 따른 비상조치들이 전사령관의 주도에 의해 이루
어 졌음을 시사했다.
이씨는 광주에서의 발포명령과 관련, "광주에서의 사격은 모두 자위권행
사에 의한 것으로 안다"고 말하고 "정호용 특전사령관도 광주에서의 작전지
휘에는 책임이 없다"고 증언했다.
이씨는 또 "계엄확대 이전의 군부대이동은 계엄확대를 전제로 한 것이 아
니며 국무회의에서 계엄확대가 의결되지 않았을 경우에도 각대학에 군을 파
견할 생각이었다"고 말해 군병력이동이 계엄확대를 전제로 한 것이라고 한
정호용씨의 증언과는 차이를 나타냈다.
이씨는 광주사태초기 전남북계엄분소장인 윤흥정장군의 체신장관 입각얘
기를 누구로부터 들었느냐는 신문에 "전사령관으로부터 들었다"고 말해 전
사령관이 군지휘관의 교체와 각료임명에 영향력을 행사했을 가능성을 풍겼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