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AI가 쏘아올린 '칩 워'…반도체, 전략자산 되다

Cover Story
요즘 하루가 멀다 하고 반도체 뉴스가 쏟아집니다. ‘애플, AI 반도체 개발 중’ ‘삼성전자-SK하이닉스, 5세대 HBM 격돌’ 같은 인공지능(AI) 반도체 관련 뉴스가 유독 많이 보입니다. 챗GPT로 대표되는 생성형 AI가 열풍을 일으킨 후 나타난 변화입니다.

챗GPT가 AI 시대를 열 수 있었던 것은 반도체의 힘이었습니다. AI 반도체를 개발한 엔비디아 주가는 급등하며 시가총액 3위까지 올랐습니다. 엔비디아의 AI 칩은 없어서 못 팔 정도입니다. AI 반도체는 게임 체인저로서 시장의 전환을 이끌고 있습니다. 기존 반도체 기업은 물론 구글·애플·아마존 같은 빅테크 기업까지 AI 칩 개발에 뛰어들었습니다. 시장을 80% 이상 장악한 엔비디아에 맞서 AI 칩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서입니다.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미국은 “실리콘(반도체)을 다시 실리콘밸리로”라고 외치며 반도체 설계부터 생산까지 자국 중심의 공급망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520억 달러(약 70조 원)의 보조금까지 내걸고 반도체 생산 공장을 유치하고 있습니다.

최첨단 반도체를 안정적으로 공급받는 것은 국가 안보에도 중요한 일입니다. 미래 전쟁에서는 AI를 활용한 첨단 무기 체계가 승패를 가를 변수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AI가 반도체 시장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자국 중심주의를 앞세운 미국의 반도체 공급망 재편을 어떻게 봐야 할지 등을 4·5면에서 살펴봤습니다.

반도체 강자부터 빅테크까지 개발 뛰어들어
'산업의 쌀' 넘어 AI 시대 '경쟁력' 핵심 됐죠

반도체는 우리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입니다. 컴퓨터·스마트폰은 물론 TV·냉장고·세탁기·자동차까지 거의 모든 전자제품에 들어가죠. 반도체가 ‘산업의 쌀’로 불린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제는 반도체 앞에 ‘전략 자산’ ‘무기’라는 표현이 붙습니다. AI 시대를 맞아 국가경쟁력과 안보의 핵심 요소가 됐기 때문입니다.안 쓰이는 곳 없는 반도체

반도체(半導體, semi-conductor)는 철, 구리 등 전기가 잘 통하는 도체(導體)와 나무, 플라스틱같이 전기가 통하지 않는 부도체(不導體)의 중간 정도 되는 물질입니다. 그래서 이름이 ‘반(半)’도체죠. 순수한 상태의 반도체는 전기가 통하지 않는 부도체와 비슷한 특성을 보이지만, 빛이나 열을 가하거나 특정 불순물을 첨가하면 도체처럼 전기가 흐릅니다. 이를 통해 전자기기를 제어하거나 정보를 저장하는 역할을 할 수 있죠.

현재 반도체의 선조 격인 진공관은 진공 속에서 전자의 움직임을 제어함으로써 전기신호를 증폭시키는 장치였습니다. 라디오와 TV 같은 전자제품에 사용했는데, 부피가 크고 전기도 많이 먹고 작동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1947년 진공관에 비해 작고 빠르게 작동하는 트랜지스터가 개발되면서 전자부품 소형화 시대가 열립니다. 그리고 1958년에 트랜지스터 여러 개를 하나의 기판에 모아놓은 집적회로(IC)가 개발되면서 반도체 시대가 본격화됩니다.

AI 시대 경쟁력의 핵심

반도체는 어떻게 인공지능(AI)을 발전시켰을까요? AI를 개발하기 위해 과학자들은 인간의 신경망을 따라 하려 했습니다. 인공신경망에는 인간의 뇌세포에 해당하는 수백만 개에서 수조 개의 매개변수가 필요한데, 학습시킬 때마다 신경망 내 값을 바꿔줘야 했죠. 하지만 연산 능력(컴퓨팅 파워)에 한계가 있었습니다.

인공신경망이 반도체를 만나면서 이 문제가 해결됐습니다. AI 반도체 강자인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가 그것인데요, 원래 GPU는 3차원(3D) 게임 같은 고품질 그래픽 처리를 위해 개발됐습니다. 컴퓨터의 두뇌에 해당하는 중앙처리장치(CPU)는 복잡한 명령어를 순차적으로 처리합니다. 이에 반해 GPU는 단순하지만 여러 데이터를 동시에 처리하는 병렬연산이 가능하죠. GPU가 AI를 학습시키는데 적합하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AI는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엔비디아가 GPU 기술을 기반으로 출시한 AI 칩은 없어서 못 팔 정도입니다. AI 가속기(데이터 학습·추론에 특화된 반도체 패키지) 제품인 H100의 개당 가격은 5000만 원이 넘고 주문해서 받으려면 1년이 걸린다고 합니다. 그러자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아마존, 메타 등 빅테크 기업들은 자체 AI 칩 개발에 뛰어들었습니다. 최근엔 애플까지 가세해 AI 칩 개발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습니다.HBM 기술 경쟁도 치열

AI 반도체 시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제품이 또 있습니다. ‘고대역폭메모리(High Bandwidth Memory)’입니다. 반도체는 크게 정보 저장을 위한 메모리 반도체와 정보 처리와 연산이 목적인 비메모리 반도체로 나뉩니다. HBM은 메모리 반도체인 D램을 여러 개 쌓아 속도를 높이면서 전력 소비를 줄인 고성능 메모리 반도체입니다. 정보 처리량이 많은 AI 가속기를 만드는 데 필수 부품으로 꼽힙니다. SK하이닉스가 4세대 HBM(HBM3)을 엔비디아에 독점 공급하며 시장을 선도하고 있으며, 삼성전자가 추격하는 모양새입니다. 주목할 또 다른 기업은 미국 마이크론입니다. 메모리 분야 3위인 마이크론은 최근 5세대 HBM 양산을 시작했다고 밝혀 삼성전자 등을 긴장시키고 있습니다.

메모리 분야의 최고의 기술력을 보유한 한국으로서는 AI 반도체 시장이 커지는 건 기회입니다. 하지만 AI가 국가안보와 직결된 만큼 각국의 주도권 경쟁도 더 치열해질 것입니다. 자금력이 풍부한 빅테크 기업들이 엔비디아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자사 제품과 서비스에 특화된 AI 반도체 개발에 뛰어든 것도 변수가 될 전망입니다.

NIE 포인트

1. 메모리 반도체와 비메모리 반도체의 차이점을 알아보자.

2. AI 반도체는 GPU 외에 어떤 것이 있는지 공부해보자.

3. 반도체 인력이 얼마나 부족한지 조사해보자.

반도체 안정적 확보는 국가 안보와 직결
외국선 보조금 무한경쟁, 한국은 기업만 분투

“지난 50년 동안은 석유가 세계 지정학 질서를 결정했지만, 이제는 반도체가 주인공이다. 아시아가 80%를 차지한 제조 비중을 북미와 유럽으로 50% 가져와야 한다.”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2월 ‘인텔 파운드리 서비스(IFS) 다이렉트 커넥트 2024’에서 강조한 말입니다. 한국, 대만 등 아시아에 빼앗긴 반도체 생산 주도권을 되찾아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을 미국 중심으로 재편하겠다는 것인데요, 미국이 벌이고 있는 ‘칩워(Chip War, 반도체 전쟁)’의 의도를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美, 자국 중심 공급망 재편

반도체 종주국인 미국은 지난 30년간 반도체를 생산하지 않고 설계와 연구개발에 주력했습니다. 설계는 미국, 제조는 동아시아(한국·대만), 소재는 일본, 장비는 유럽이라는 분업 구조가 형성됐죠. 이 패러다임 속에서 한국의 반도체 산업은 메모리와 파운드리(위탁생산)를 중심으로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게임의 룰이 바뀌고 있습니다. 2022년 미국 정부가 반도체법을 제정할 때만 해도 한국·대만·일본과의 칩4 동맹을 통해 중국에 맞섰습니다. 그런데 미국은 최첨단 반도체의 연구개발, 설계는 물론 생산까지 미국 안에서 하겠다며 굴기를 드러냈습니다. 자유무역 규범은 안중에도 없는 듯 막대한 보조금을 투입하고, 자국 기업을 밀어주며 자국 중심주의를 노골화하고 있습니다.

인텔에는 200억 달러(약 27조 원)에 달하는 보조금·대출을 지원하며 파운드리 생태계 조성을 돕고 있습니다. 인텔은 2030년까지 파운드리 업계 2위에 오르겠다고 선언하고, 2027년까지 1.4㎛(10억분의 1m) 반도체 양산에 나서겠다는 로드맵도 발표했습니다. 2위인 삼성전자를 제치겠다는 건데요, 인텔의 위협을 허풍으로만 보기 어렵습니다. 벌써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등 빅테크들로부터 150억 달러의 주문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정부와 기업들이 사실상 ‘팀 USA’를 결성해 성과를 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일본도 TSMC 공장을 유치하며 반도체 부활에 승부수를 던졌습니다. TSMC 구마모토 1공장에 4760억 엔(약 4조2000억 원)을 지원했고, 2공장에 7320억 엔의 보조금을 지급할 계획입니다. 당초 5년 걸릴 것으로 예상됐던 1공장은 정부와 지자체가 부지 조성과 인허가 등을 일사천리로 진행한 덕분에 불과 2년 만에 완공됐습니다. 보조금 경쟁에는 유럽연합(EU), 인도까지 나설 정도로 국가 대항전이 되고 있습니다.

국가 총력전이 된 반도체 전쟁

미국은 왜 공급망을 재편하려는 것일까요? 경제적·산업적 요인도 있겠지만 안보 차원에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반도체는 AI의 핵심으로 미·중 패권 경쟁의 정점에 있습니다. 미국은 중국에 첨단 반도체 칩과 장비를 수출하는 것을 통제하고 있습니다. AI 경쟁에서 중국의 추격을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미입니다.

자국 기업인 엔비디아가 설계한 AI 반도체가 대만 TSMC에서 생산된다는 점도 미국 입장에선 우려스러운 대목입니다.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이 있는 상황에서 안정적 반도체 공급망을 구축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니까요. TSMC가 미국과 일본 독일에 공장을 세우기로 한 것도 지정학적 리스크를 해소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세계 각국이 반도체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긴박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경쟁국들은 수조 원의 보조금을 지원하며 반도체 투자 유치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습니다. 한국은 미·중 반도체 패권 경쟁의 한복판에 끼어 있습니다. 우리 정부의 대응은 상대적으로 미진하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보조금은 언감생심이고 반도체 투자금 일부 세액을 공제하는 제도는 올해 말 종료됩니다. SK하이닉스가 짓기로 한 용인 반도체 공장은 전력, 용수 문제 등으로 6년째 착공도 못 했습니다. 반도체는 속도전이 중요한데, 자기 나라에서 공장도 제때 짓지 못하면서 K-반도체의 미래는 점점 어두워지고 있습니다. 경쟁국들이 정부와 기업이 하나 되어 뛰는 상황에서 기업들의 역량에만 맡겨둬서는 안 됩니다. 정부와 정치권은 위기의식을 갖고 실질적 지원책을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NIE 포인트

1. 미국의 반도체 지원법 내용을 자세히 알아보자.

2. 한국과 미국, 일본, 중국 간 반도체 기술 격차를 조사해보자.3. 보조금이 자유무역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토론해보자.

양준영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tetriu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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