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옛날 이들은 식물이며 동물을 초정밀 사진처럼 담아냈다 [서평]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기 위해 항해를 떠난 자연사 학자의 곁엔 늘 화가가 있었다. 화가들은 수많은 신종 생물의 생생한 모습을 세밀하게 담았다. 동식물의 구조에 대한 전문적 지식을 바탕으로 자연을 충실히 기록했다. 사진술이나 영상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17세기, 자연사 화가들이 아니었다면 찰스 다윈의 자연선택 등 오늘날 유명한 연구들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영국 런던 자연사박물관 큐레이터 출신의 토니 라이스가 쓴 <자연을 찾아서>는 17~20세기 자연사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열 번의 탐험과, 그 속에서 탄생한 위대한 예술작품을 소개한다. 런던 자연사박물관에 소장된 50만 점의 미술 컬렉션과 100만 권의 장서 중 엄선한 희귀 자료를 독점적으로 실었다. 책은 지금의 대영박물관을 있게 한 한스 슬론의 자메이카 여행부터 진화론의 배경이 된 다윈의 비글호 탐사, 해양학을 탄생시킨 최대의 과학 탐사 챌린저호 항해까지 자연과학의 분수령이 된 탐험들을 다룬다. 잘 알려진 과학자나 탐험가의 덜 알려진 일화부터, 그 과정에 동참했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들의 분투기 등을 일목요연한 스토리텔링으로 들려준다.

이중 하나가 자연사 화가들이다. 그들은 자연을 단지 아름답게 그려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자연과학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된 발견에 기여했다. 1699년 수리남을 찾아 나비의 변태 과정과 유충 및 성충의 먹이 식물을 그린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이나 네덜란드 화가 파울 헤르만, 피터르 드 베베러 등이 없었다면 식물학의 대가 린네는 식물지를 완성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태평양에서도 수많은 화가가 중요한 항해가 있을 때마다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제임스 쿡이 조지프 뱅크스, 그리고 뱅크스의 박물학자 다니엘 솔란데르와 함께했던 인데버호 항해에는 시드니 파킨슨이 있었고, 쿡의 레절루션호 항해에는 게오르크 포르스터가 있었다. 매슈 플린더스가 지휘한 인베스티게이터호 항해에는 최고의 자연사 화가라고 평가받는 페르디난트 바우어가 있었다. 오늘날엔 전자현미경 등이 발달해 더이상 자연 연구에 그림이 필요하지 않은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저자는 사진과 영상 기술이 고도로 발전한 지금도 그림만이 해낼 수 있는 역할이 있다고 강조한다. 표본 상태가 완전하지 못하더라도 그대로 찍을 수밖에 없는 사진과와 달리, 화가는 그런 상황에서도 종이 위에서 조각조각을 결합해 완벽한 표본을 창조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창조성이야말로 자연사 미술의 힘이라고 말한다.

방대한 그림 자료는 이 책을 읽는 데 큰 줄거움을 준다. 역사적 탐험에서 탄생한 화려한 예술작품과 오늘날까지 생물학과 분류학에서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는 기준표본 등도 수록돼 있다. 런던 자연사박물관 자료 중 기존에 대중에 공개되지 않았던 자료도 볼 수 있다. 함께 실린 상세한 설명을 따라가며 책장을 넘기다 보면 자연사박물관 한복판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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