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 국보 530점을 한자리에...색연필로 그린 한반도 보물들

리움 고미술 상설전시장에서
갈라 포라스 김 개인전 개최
국보 옆 12m 색연필 드로잉으로
수백년 시간 뛰어넘는 호흡
가야시대 때 만들어진 화려한 금관, 사람 키 만한 고려 금동 대탑, 김홍도가 그린 '군선도'…. 서울 한남동 리움미술관 고미술 상설전시장은 한반도의 수백년 역사가 살아숨쉬는 곳이다.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 시절부터 모아온 국보 10점, 보물 7점이 전시돼있다. 한국을 찾는 해외 VIP들이 이곳을 '필수 방문코스'로 꼽는 이유다.

최근 이곳에 색연필로 그려낸 현대 드로잉 작품이 들어섰다. 네 개의 캔버스를 이어붙여 벽 한면을 가득 채운 길이 12m의 대작 이름은 '국보 530점'(2023). 우리나라 국보와 북한의 국보 530점을 등재 순서대로 교차해서 그린 작품이다. '숭례문(한국 국보 1호) - 평양성(북한 국보 1호) - 서울 원각사지 십층 석탑(한국 국보 2호) - 안학궁 성터(북한 국보 2호)', 이런 식이다.
갈라 포라스-김 작가(39)가 그린 작품이다. 이름도 독특한 그는 콜롬비아와 한국인 혼혈이다. 포라스는 아버지의 성에서, 김은 어머니의 성에서 따왔다. 그는 고대 유물이 현재의 역사적·사회적 맥락에서 어떻게 해석되고, 분류되는지를 탐구한다. 미국 해머뮤지엄,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LACMA) 등 유수기관의 전시에 참여했다. 최근엔 국립현대미술관이 선정하는 올해의 작가상 후보에도 올랐다.

"역사는 층층이 쌓이는 레이어와 같아요." 지난달 31일 리움미술관에서 열린 아티스트 토크에서 포라스-김 작가는 자신의 작품세계를 이렇게 요약했다.

"우리가 미술관에서 보는 유물 하나하나엔 발굴 당시의 상황, 역사학자와 보관·관리사의 해석 등 여러 관점이 겹겹이 쌓여있어요. 국보도 마찬가지죠. 왜 이 유물이 국보로 지정됐는지, 왜 어떤 유물은 국보였다가 다시 해제됐는지 등을 생각해보면 하나의 유물에 겹쳐진 여러 레이어들을 마주할 수 있어요."
그가 그린 530점의 국보를 찬찬히 보다 보면 눈에 띄는 특징을 볼 수 있다. 첫 번째, 초반에 지정된 국보들은 주로 건축물이었는데, 점점 도자기, 문서 등 움직일 수 있는 동산(動産)이 늘어난다는 점. 두 번째, 우리나라에 비해 북한 국보가 훨씬 적어 뒤로 갈수록 듬성듬성해진다는 점이다. 한반도라는 한 공간에서 만들어진 고대 유물들이 남북체제에서 어떻게 갈라지는지를 한눈에 담을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전시 구성이다. 리움미술관은 포라스-김의 국보 드로잉과 리움이 보유하고 있는 실제 국보들이 서로 마주하도록 배치했다. 가야시대 금관, 고려시대 청동은입사 보상당초봉황문 합, 청동은입사 용문 향완 등 그림 속 이미지와 실물을 비교해보는 것도 전시의 재미다.

고미술과 현대미술이 함께 호흡을 맞추는 전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리움미술관은 지난 5월 가상현실(VR) 기기를 쓰면 김홍도의 군선도 속 인물들이 3차원(3D)으로 살아움직이는 권하윤 작가의 관객 체험형 작품을 이곳에서 선보였다.
포라스-김 작가의 전시는 내년 3월 31일까지 열린다.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

핫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