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 갈등의 시대…지금은 다름을 인정하는 和가 절실한 때"

'영원한 마도로스' 김재철 동원 명예회장, 서울대생과 대화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 달라져
'지덕체' 아닌 '덕체지' 세상
지식으로 잘난 척하는 시대 끝나

기업 잘 되려면 정성(誠)이 중요
동원, 사회에 필요한 기업 되려 노력
젊은 세대에 도전정신 전수하고파
김재철 동원그룹 명예회장(89·사진)은 유독 젊은이들과의 소통을 즐긴다. 2019년 동원산업 창립 50주년에 동원그룹 회장직을 자발적으로 내려놓은 뒤 외부 행사에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지만, 1020세대와의 만남이라면 지금도 두 손 들고 나선다. 원양어선 마도로스였던 김 명예회장이 자산총액 9조원의 그룹을 일궈내기까지 평생 실천해왔던 도전정신과 기업가정신을 젊은 세대에게 전수하겠다는 사명감 때문이다.

김 명예회장은 지난 14일 동원육영재단이 후원하는 서울대 자유전공학부의 ‘SNU라이프아카데미’ 4주년을 기념한 활동 보고회에 참석해 서울대 학생 40명과 자유 토론을 했다. 주황색 넥타이, 녹색빛 정장을 입고 나타난 김 명예회장은 손목에 스마트워치를 찬 채 학생들과 두 시간 가까이 대화를 나눴다. 김 명예회장은 “앞으로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재상은 무엇보다 덕(德)을 갖춘 사람일 것”이라며 “사회 전체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선 조직원 간 협력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동원산업이 내년 창립 55주년을 맞습니다. 그간의 경험에 빗대어 볼 때 현시대가 요구하는 인재상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퇴임 전까지 신입사원 면접에 매번 참여하면서 많은 젊은이를 봤습니다. 지금은 ‘지덕체(智德體)’가 아니라 ‘덕체지(德體智)’의 시대입니다. 지식이 많다고 해서 잘난 척 할 수 있는 시절은 지났다는 것이죠. 타인과 교류하고 소통할 줄 아는, ‘덕’을 가진 사람이 각광받을 겁니다.

제가 늘 강조하는 것이 ‘메트칼프의 법칙’입니다. 집단 내 참여자가 많아질수록 해당 집단의 가치는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는 뜻입니다. 개인의 역량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서로 협력하는 태도가 있어야 사회 전체의 가치를 높일 수 있습니다.”▷좋은 기업을 만들고자 하는 예비 기업인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칠판에 직접 ‘誠(정성 성)’을 쓰며) 성실한 경영이 중요합니다. 선원으로 근무하면서 몇 번이고 죽을 고비를 넘길 때마다 ‘내 남은 인생은 덤으로 사는 인생이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1969년 동원산업을 설립했을 때도 ‘성실한 기업활동으로 사회정의 실현’을 사시로 내세우며 성실을 강조했습니다. 소비자에게 거짓말하지 않겠다는 약속이기도 합니다. 2008년 스타키스트라는 미국 참치 통조림 회사를 인수한 뒤에도 제품 가격 대비 품질은 어떤지 꾸준히 점검했습니다.

10년 전 동원그룹의 비전을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사회 필요기업’으로 제시했습니다. 돈을 많이 버는 것에 집중하기보다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 사회가 필요로 하는 기업이 되자는 것입니다.”▷한국이 마주한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한국은 급속한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지난 70년간 후진국에서 선진국으로 발전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세대 간 갈등이 수반됐습니다. 세계 최빈국에서 개발도상국, 선진국까지 단기간에 바뀐 환경에서 세대 간 생각이 같을 수는 없으니까요. 제 자식들만 하더라도 열 살 차이가 나는 장남과 막내의 생각이 서로 다릅니다. 자식들이 모두 어릴 적, 막내가 제게 비싼 것을 사달라고 하니 형·누나들이 혼내더군요. 그랬더니 막내가 이렇게 반박했습니다. ‘형은 아버지가 선장일 적에, 누나들은 아버지가 회사 임원일 때 태어났지만 나는 아버지가 회장일 적에 태어났으니 비싼 걸 요구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느냐’라고요. 열 살 차이도 이럴진대 70년 차이를 금방 극복하기는 힘들 겁니다.”

▷사회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는 어떠한 것들이 있습니까.“세대 간 갈등을 중화할 수 있는 것은 ‘화(和)’의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의견을 듣고 다름을 인정할 줄 알아야 합니다. 소금(NaCl)을 구성하는 두 속성을 보세요. 나트륨(Na)과 염소(Cl)는 원소 주기율표 상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만 합쳐져 소금을 만들어내지 않습니까.

서로 다른 두 속성이 만나 합쳐지면 힘이 생기고 그 속성이 다를수록 더 큰 힘이 분출됩니다. 하지만 우리 역사와 사회는 아직 이를 터득하지 못한 듯합니다. 한국의 약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장학사업에 몰두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세계 다양한 사람을 만나보니 한국은 좁은 영토, 부족한 자원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역량이 굉장히 뛰어났습니다. 배에서 말단 선원으로 일할 적에 ‘내가 자라서 힘이 생기면 교육에 최우선을 두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회사를 차리기 전부터 장학사업을 시작했죠. 지금까지 약 1만 명이 혜택을 받았습니다. 이들이 훌륭한 인재로 성장한다면 내 자식이 잘되는 것 못지않게 기쁜 심정일 것입니다.”

라이프아카데미는 동원육영재단 교육프로그램
서울대 등 15개 기관서 6년간 2733명 수료생 배출

동원육영재단에서 운영하는 전인교육 프로그램이다. ‘바른 인재를 키워 큰 세상으로 내보내겠다’는 목표로 명사 특강, 독서토론, 봉사활동, 대학별 활동 등을 하고 있다.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서울대, 연세대, 인하대 등 15개 교육기관에서 총 2733명의 수료생을 배출했다.

김재철 명예회장은 2019년 경영 일선에서 퇴임한 이후에도 동원육영재단을 통해 학생들과의 만남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김 명예회장의 장녀인 김은자 동원육영재단 상임이사도 라이프아카데미 운영에 참여하고 있다.

■ 김재철 회장은…△1934년 전남 강진 출생
△1958년 부산수산대 졸업
△1961년 원양어선 ‘지남2호’ 선장
△1969년 동원산업 설립
△1979년~ 재단법인 동원육영재단 이사장
△1982~1996년 동원증권(옛 한신증권) 사장
△1989~2019년 동원그룹 회장
△1999~2006년 한국무역협회 회장
△2003년 한국투자금융그룹 설립
△2019년~ 동원그룹 명예회장

한경제 기자 hanky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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