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구정에 거인이 떴다…카메라 회사가 만든 'MZ 핫플'

후지필름이 만든 예술 공간 '파티클'

"작은 입자처럼 다양한 이야기 다루자"
미디어아트·드로잉 등 장르 넘나들며 전시

관람객 10명 중 7명이 2030…'MZ 핫플'로 거듭
후지필름 2030 고객 비중도 2배 ↑
서울 강남의 대표 상권인 압구정로데오역 4번 출구. 이곳에 자리잡은 카메라 매장 지하로 내려가면 비밀스러운 공간이 나타난다. 삼면의 벽에 '에덴동산'이 펼쳐지고, 3차원(3D) 미디어 아티스트 소희의 '시그니처 캐릭터'인 목이 길쭉한 거인이 공중에 둥둥 떠다닌다.

카메라 회사 후지필름이 만든 복합 문화·예술 공간 '파티클'이다. 파티클은 전시 좀 다닌다는 아트 애호가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난 '핫플(핫플레이스)'이다. 미디어아트를 비롯해 사진, 회화, 설치작품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른다.카메라 회사가 사진전을 연 적은 많지만, 이렇게 장르를 넘나드는 전시장을 낸 건 국내에서 파티클이 유일하다. 여기서 드는 궁금증. 후지필름은 왜 이런 복합 문화·예술 공간을 만들었을까.

◆카메라 회사가 만든 '예술 놀이터'

최근 파티클에서 만난 임훈 후지필름코리아 사장의 답은 명쾌했다. "정체돼 있는 카메라 시장에서 '후발주자'인 후지필름이 살아남으려면 20~30대 고객을 반드시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다른 연령대보다 '갖고 싶은 건 꼭 사겠다'는 이들이 많은 세대죠. 이들을 잡으려면 언제든 편하게 찾아와 즐길 수 있는 '놀이터'부터 만들어야겠다는 결론에 다다랐죠."후지필름코리아는 그렇게 2021년 100평(330㎡)이 넘는 지하 공간을 사진 전시장에서 복합문화공간으로 바꿨다. 전시 전문 인력을 영입하고, 전시장 이름도 지었다. '작은 입자처럼 다양한 이야기를 다루자'는 뜻의 '파티클'로.
사진은 파티클이 다루는 여러 분야 중 하나일 뿐이다. 종이 설치작품으로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는 박혜윤 작가, 이미지를 해체하고 조합해 환상적인 디지털 콜라주 작품을 선보이는 나승준 작가, 사람과 개를 주제로 감성적인 드로잉을 그리는 이나영 작가, 전통 민화를 소재로 일러스트를 그린 무직타이거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 5명이 지난해 이곳에서 전시를 열었다.

임 사장은 "사진 전시만 열 때보다 관람객이 300배 이상 더 늘었다"며 "전체 관람객의 10명 중 7명이 20~30대"라고 했다. 누적 관람객은 2년 만에 2만 명을 기록했다.

◆'2030 고객' 비중 2년 만에 2배

전시장 곳곳엔 후지필름이 숨어 있다. 작품을 감상하면서 자연스럽게 후지필름을 알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배치했다. 이달 31일까지 열리는 3D 아티스트 소희 개인전 '위어드 벗 뷰티풀 월드'가 대표적이다. 소희 작가만의 독특한 캐릭터인 '긴목이'가 살아 움직이는 영상 작품에 후지필름의 프로젝터를 사용했다.
파티클의 성과는 후지필름코리아의 매출 확대로 이어지고 있다. 임 사장은 "스마트폰의 카메라 기능이 갈수록 향상되면서 전문 카메라 업체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후지필름코리아는 2016년부터 한 해도 빼놓지 않고 매출이 성장하고 있다"고 했다. 캐논, 소니, 니콘 등 경쟁사들이 타격을 입었던 코로나19 기간에도 매출이 늘었다.

임 사장은 그 공을 파티클에 돌렸다. 젊은 고객이 늘면서 판매 실적을 견인했다는 설명이다. 후지필름코리아의 20~30대 고객 비중은 2020년 36%에서 지난해 69%로 급상승했다. 임 사장은 "제품 라인업이 크게 바뀌지 않았는데도 이렇게 젊은 고객이 늘어난 건 파티클 덕분"이라며 "문화사업을 통해 본업 경쟁력을 끌어올린 '예술경영'의 성공사례로 자평하고 있다"고 했다.
처음엔 "뭣하러 이런 전시장을 만드냐"고 마땅치 않은 눈초리를 보냈던 일본 후지필름 본사는 이제 파티클의 성공 사례를 다른 나라에도 적용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임 사장은 "전주국제영화제와 손 잡고 전시장에서 영화도 선보이는 등 한층 더 다양한 장르의 문화·예술을 선보일 계획"이라고 했다.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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