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어퍼머티브 액션과 역차별

담장 너머를 보려는 사람들에게 같은 높이의 발판을 주면 어떻게 될까. 키가 아주 작은 사람은 발판을 딛고도 담장 밖을 볼 수 없다. 대신 키에 따라 다른 높이의 발판을 제공하면 모두가 담장 밖 풍경을 볼 기회를 얻는다. 평등과 공평을 얘기할 때 자주 등장하는 카툰 내용이다. 미국의 소수 집단 우대 정책인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도 이런 취지에서 시작됐다. 흑인 인권운동이 폭발하던 1961년, 존 F 케네디 당시 대통령은 ‘정부 기관들이 지원자의 인종, 신념, 출신 국가와 무관하게 고용되도록 적극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내용의 행정명령을 내렸다. 이후 정책의 적용 대상과 범위가 확대되면서 미국 내 대학들도 소수인종을 우대하는 입학 제도를 도입했다.

어퍼머티브 액션은 출발선이 달랐던 흑인·히스패닉에겐 주류 사회 진출의 디딤돌이 됐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자신을 “학창 시절에 의심할 여지 없이 소수인종 우대정책의 혜택을 받은 사람”이라고 했고, 프린스턴대를 졸업하고 히스패닉 최초로 연방대법관에 오른 소니아 소토마요르 역시 “완벽한 소수인종 우대정책의 수혜자”라고 스스로를 표현했을 정도다.이 정책은 그러나 60여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또 다른 차별을 낳았다. 백인·아시아계 학생들은 우수한 학업 성적에도 흑인·히스패닉 등에게 주어지는 인종 우대 점수에 밀려 명문대에 진학하지 못하는 역차별을 당하고 있다며 소송을 이어왔다. 그럼에도 연방대법원은 인종을 입학 사정 과정에서 여러 요인 중 하나로 고려하는 것은 합헌이라는 판단을 유지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임기 중 보수 성향 대법관을 3명이나 임명한 여파일까. 연방대법원이 29일(현지시간) 노스캐롤라이나대와 하버드대가 어퍼머티브 액션으로 백인과 아시아계 입학 지원자를 차별했다며 현지 학생 단체가 제기한 헌법소원 재판에서 각각 6 대 3, 6 대 2로 위헌 결정을 내렸다. 선의에서 비롯된 차별도 차별이란 점에선 다를 바 없다며 기존 판례를 뒤집었다. “수십 년의 판례와 중대한 진보를 되돌렸다. 정상적 법원이 아니다”며 조 바이든 대통령이 강한 불만을 드러냈지만, 연방대법원은 인종을 고려한 다른 높이의 발판을 이제는 치워야 한다고 결정했다.

류시훈 논설위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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