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리뷰] '행복한 왕자', 아낌없이 주는 왕자가 안쓰럽다면…당신도 '어른'이 된 겁니다

원작동화에 약간의 각색 거쳐
모든 인물 1인칭 시점으로 전달
어른 된 다음 보면 색다른 느낌

1인극, 캐스팅 따라 다른 분위기
무대 허전하게 느껴진 건 아쉬워
“아기 공룡 ‘둘리’보다 중년의 배 나온 아저씨 ‘고길동’이 더 불쌍하다고 느껴지면 비로소 어른이 된 거야.”

똑같은 책이나 영화라도 언제 봤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작품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콘텐츠는 그대로지만, 그것을 보는 사람이 변했기 때문일 것이다. 어린 시절 만화 ‘아기공룡 둘리’를 볼 땐 혈혈단신으로 서울에 떠밀려온 둘리가 불쌍하게 느껴졌지만, 어른이 된 후엔 갑자기 떨어진 군식구들 뒤치다꺼리에 정신없는 가장 고길동이 더 안쓰럽게 느껴지는 것처럼. 어른이 돼 동화를 다시 읽는 재미가 바로 이런 게 아닐까.최근 서울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에서 개막한 뮤지컬 ‘행복한 왕자’를 보면 비슷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오스카 와일드가 쓴 동명의 동화를 원작으로 만든 창작 뮤지컬이다.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 읽었을 법한 동화다. 금과 보석으로 뒤덮인 화려한 왕자 조각상이 가난하고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제비에게 부탁해 자신의 보석들을 모두 떼어서 주는 이야기다.

뮤지컬은 원작 동화의 줄거리와 결말을 그대로 따라가지만 약간의 각색을 거쳤다. 주인공 행복한 왕자뿐 아니라 제비를 비롯해 왕자의 도움을 받는 도시인 등의 삶을 각각 1인칭 시점에서 전달한다. 제비가 왕자의 눈에 박힌 보석을 떼면서 초조해하는 장면이나, 가난한 청년이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장면 등을 각자의 시점으로 그리면서 현대인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어른의 시선에서 다시 보는 ‘행복한 왕자’는 색다르다. 관객들은 남을 위해 모든 것을 내어주는 왕자를 애타는 심정으로 바라보는 제비에게 공감하고, 왕자를 돕느라 제때 따뜻한 곳으로 날아가지 못해 얼어 죽는 제비를 보며 희생적인 사랑에 감동한다. 작품을 제작한 한승원 HJ컬쳐 대표는 “이 작품을 본 관객들이 그저 ‘감동적인 동화를 한 편 봤다’고 느끼는 데 머무르지 않고 인생의 질문을 하나씩 품고 공연장을 나갈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고 말했다.1인극으로 구성한 것은 이 뮤지컬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배우 한 명이 이야기를 서술하는 오스카 와일드, 행복한 왕자, 제비 그리고 각종 주변인을 모두 연기한다. 배우 양지원·이휘종·홍승안 등 캐스팅에 따라 극의 분위기가 전혀 달라져서 비교하며 보는 재미가 있다. 1인극답게 관객이 배우와 직접 호흡하면서 극을 즐길 수 있다.

그러나 배우 한 명이 이끌고 가기엔 무대가 허전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배우 한 명과 대화하면서 80분 내내 지루하지 않기도 힘들다. 공연은 6월 18일까지.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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