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의 잔인함은 '열등감' 때문"…러시아 최상류층의 증언 [별 볼일 있는 OTT]

파라마운트플러스 다큐 '올리가르히의 여인들'
샤론 스톤, 캐빈 코스트너, 모니카 벨루치….

쟁쟁한 스타 배우들이 일제히 무대 위 한 남자를 쳐다보고 있다. 글로벌 스타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은 남자는 검은색 정장을 입고 어색한 영어로 노래를 부른다. 이 모습은 곧 방송과 신문을 통해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한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노래를 불렀던 그 남자에게 그토록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된 이유는 그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남자’ 블라디미르 푸틴이어서다. 2010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자선행사에서 푸틴은 서방국가의 스타들 앞에 서서 직접 피아노를 치고, 노래를 불렀다.

그는 이 자리에서 ‘미국과 러시아 정부의 관계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 간의 관계’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 때만 해도 사람들은 알았을까. 12년 뒤 이 남자가 20만 명이 넘는 사망자를 낸 우크라이나 전쟁을 일으킬 줄은.
파라마운트플러스가 제작한 80분짜리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올리가르히의 여인들: 러시아 재벌가의 비밀’은 이렇게 시작한다. 다큐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난 직후인 지난해 6월 미국에 먼저 공개됐다. 티빙이 파라마운트플러스와 제휴를 맺으면서 한국에서도 볼 수 있게 됐다. 다큐를 보려면 먼저 올리가르히가 누구인지 알아야 한다. 올리가르히는 소련이 무너지는 과정에서 생겨난 신흥 재벌층을 일컫는 말이다. '과두제'를 뜻하는 영단어 '올리가키(oligarchy)'와 같은 의미다.

이들은 국영기업이 민영화되는 과정에서 정부의 보호를 받으며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그리고 이 부를 바탕으로 정치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무명 스파이’에 불과했던 푸틴을 대통령 자리에 앉힌 것도 올리가르히였다.

푸틴을 다뤘던 여느 프로그램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은 바로 여기다. 이 다큐는 정치·외교 평론가나 러시아 전문가들의 분석에 집중하지 않는다. 실제 푸틴의 곁에서 그를 지켜봤던 올리가르히의 아내, 딸, 연인의 입을 빌려 푸틴의 본모습을 드러낸다. 키가 작은 푸틴이 올리가르히 중 한 명인 세르게이 푸가체프가 수영을 하는 모습을 보곤 ‘팔이 참 기네요’라고 말하며 부러워하던 것, 생전 친했던 아나톨리 솝차크의 기일마다 가족에게 안부 전화를 하는 것 등 최측근이 아니면 알 수 없는 푸틴의 인간적인 면모를 볼 수 있다.
그렇다고 다큐는 푸틴을 미화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자신에게 복종하지 않는 올리가르히를 독극물로 암살하는 등 푸틴의 비인간적인 행동을 가감없이 드러낸다. 처음엔 그저 ‘말 잘 듣는 정치인’에 불과했던 푸틴이 곧 발톱을 드러내고 올리가르히를 압박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런 푸틴의 잔인함 뒤에는 ‘질투’와 ‘열등감’이 있다는 게 그들의 생각이다. 어렸을 적 가난하게 자랐던 푸틴이 호화스러운 올리가르히의 생활에 반감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특권층을 싫어했던 푸틴은 역설적으로 자신이 특권층으로 올라섰다. 자신만의 왕국을 공고히 하기 위해 전쟁이라는 비이성적 결정까지 하게 됐다는 것이다.

다큐는 1년이 넘도록 이어지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쑥대밭이 된 풍경과 함께 올리가르히의 여인들의 말로 끝을 맺는다. “모든 러시아인이 느끼는 감정은 수치심이에요. 푸틴은 폭군이지만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이죠. 푸틴이 더는 러시아의 대통령이 아니라는 것, 그게 아침마다 저희가 바라는 소식이에요.”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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