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의 저주' 우려에…하이브, SM엔터 경영권 대신 실리 택했다

'18만원 공개매수' 성공해도
高價인수 논란 피할 수 없어
네이버와 공동전선 구축 불발
방시혁, 김범수 / 사진=한경DB
배재현 공동체투자총괄대표 등 카카오 핵심 인력들은 지난 9일 외부 일정 중 급히 회사로 복귀했다. 이날 오후 하이브가 보내온 제안 때문이었다. 하이브는 주당 18만원에 SM엔터테인먼트 공개매수에 나설 수도 있지만 하이브의 팬 커뮤니티 플랫폼인 위버스 사업을 SM엔터가 지원해 준다면 경영권을 양보하겠다고 했다.

이튿날인 10일 카카오는 SM엔터를 찾아 오전 9시30분부터 오후 4시까지 장시간 회의 끝에 하이브에 제시할 합의안을 마련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이브는 11일 이 합의안에 동의했고, 12일 SM엔터 경영권 인수 절차를 중단한다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최근 한 달 넘게 국내 증시를 뒤흔든 하이브와 카카오 간 ‘쩐의 전쟁’이 마무리된 순간이었다.

‘승자의 저주’에 공감

하이브는 이달 초 주당 12만원에 진행한 공개매수에 실패한 뒤 ‘강공’과 ‘회유’ 투트랙 전략으로 SM엔터 경영권 분쟁에 대응했다.

대외적으론 강한 인수 의지를 나타냈다. 모건스탠리를 통해 1조원대 자금 마련에 나서는 동시에 미래에셋증권에서 4000억원을 단기대출(브리지론)로 조달하는 방안에 합의하고 계약을 앞두고 있었다. 주당 18만원의 2차 공개매수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하이브는 최근까지 위버스 2대 주주(44.55%)인 네이버와 함께 SM엔터 경영권 인수를 추진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네이버도 SM엔터 인수 의사를 국민연금에 전달하고 의견을 타진한 것으로 전해졌다.

물밑에선 카카오와의 합의 가능성을 열어뒀다. 이달 초 이재상 하이브아메리카 대표가 배재현 대표와 ‘핫라인’을 열고 대화 창구를 마련했다.

방시혁 하이브 이사회 의장은 지난 9일까지 자산운용사 등 기관투자가와 미팅한 뒤 카카오와 합의하는 쪽으로 마음을 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운용사 대표들은 SM엔터를 지나치게 고가에 인수하면 하이브 주가 폭락 등 ‘승자의 저주’가 우려된다는 목소리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지난주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뱅크런 소식이 전해지며 대외 환경 불확실성이 커진 점도 현금 확보에 집중해야 한다는 재무라인 의견에 힘을 실어줬다. 네이버가 SM엔터 인수전 참전에 미지근한 태도를 고수한 점도 영향을 미쳤다. 방 의장은 SM엔터 경영권 양보를 최종 승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이브 “실익 챙기자”로 선회

방 의장의 승인 이후 하이브는 카카오에 위버스 사업 협력을 매개로 경영권 분쟁을 해결하자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카카오는 하이브가 SM엔터 인수를 포기하고 실익을 챙길 명분을 제공했다. 카카오가 SM엔터 경영권 확보 이후 위버스에 지식재산권(IP) 사용권을 제공하는 등 적극적으로 협력하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하이브가 이날 입장문에서 “양사가 플랫폼 관련 협업 방안에 대해서도 합의를 이뤘다”고 발표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구체적인 방안을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이번 합의로 SM엔터 소속 아티스트의 공연, 팬 커뮤니티, 웹 콘서트, 굿즈 등이 위버스에서 유통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이브가 애초 SM엔터 경영권 인수를 추진한 것도 위버스를 키우려는 목적이 컸다. 하이브는 네이버가 운영하던 팬 커뮤니티 서비스 브이라이브를 지난해 영업양도 방식으로 인수해 위버스에 통합했지만 사업 확대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SM엔터와 위버스 간 가처분 소송 때문이었다. 네이버는 2020년 SM엔터에 1000억원을 투자하고 브이라이브에 SM엔터 아티스트 IP 등을 공급받기로 했다. 네이버가 SM엔터에 알리지 않고 경쟁사인 하이브에 브이라이브를 매각하자 SM엔터는 콘텐츠 공급을 중단했다. 이에 위버스는 SM엔터를 상대로 “최초 계약을 이행하라”며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지만 최근 2심까지 패소했다.하이브가 이날 카카오와 플랫폼 사업에 협력하기로 합의하면서 위버스는 SM엔터 콘텐츠를 다시 공급받을 수 있는 ‘물꼬’를 튼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카카오는 자회사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상장을 위한 마지막 퍼즐인 SM엔터 경영권 확보에 성공했고 하이브는 핵심 플랫폼인 위버스에 에스파 등 SM엔터 아티스트의 IP를 활용할 수 있게 됐다”며 “양측이 윈-윈할 묘수를 찾은 것”이라고 말했다.

차준호/이동훈/하지은 기자 lee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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