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장 칼럼] 조국과 정순신, 공화국의 위기

노경목 정치부 차장
지난달 3일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자녀 입시 비리 혐의 등으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다. 같은달 말 국가수사본부장으로 임명됐던 정순신 변호사는 아들의 학교폭력 문제로 낙마했다. 자녀를 위해 갖은 부도덕을 마다하지 않는 엘리트들의 민낯이 진영을 가리지 않고 확인됐다. 이는 민주주의와 함께 대한민국의 뼈대를 이루는 공화주의를 위기에 빠뜨리고 있다.

1979년 10·26 사태로 공화당이라는 이름이 정치사에서 퇴장했기 때문일까. ‘민주’의 과잉과 대비해 ‘공화’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이해는 빈곤하다. 민주주의가 시민에 의한 통치를 내세우며 적극적인 권리를 주장하는 개념이라면, 공화주의는 집권자의 사익 추구와 중우정치로 민주주의가 타락하지 않기 위한 절제를 강조한다. 사익과 권리 확보 이상으로 공동체에 헌신할 것을 시민에게 호소한다. 법적 틀 내라도 개개인의 사익 추구가 극단화되면 공적 영역이 황폐화돼 전체주의로 내몰린다는 이유에서다.

엘리트들의 빗나간 자식 사랑

기실 조 전 장관 부부의 입시 비리 사건을 뜯어보면 대단한 권력을 남용한 것이 아니다. 딸 조민 씨가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한 것은 2015년으로 조 전 장관이 문재인 정부의 실세로 떠오르기 전이다. 대부분 비리는 주변 교수사회와 대학 고위층의 묵인, 인정하에 이뤄졌다. “한 가족을 망가뜨릴 정도로 큰 문제가 아니다”는 ‘조국기 부대’의 외침에는 비리를 바라보는 사회 일각의 인식이 녹아 있다.

이는 검찰 구성원들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아들의 학폭을 감싸며 정부와 법정투쟁을 벌이던 2년간 정 변호사는 인권감독관 등으로 검찰에 몸담았다. 어느 조직보다 첩보에 민감한 검찰에서 공중파 방송까지 보도된 사실을 몰랐다고 믿기 어렵다. 윤석열 정부에서 고위공직자 인사 검증을 맡은 법무부와 대통령실 인사비서관, 공직기강비서관 등은 정 변호사와 함께 검사 생활을 한 인물들로 채워져 있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판단이 들었을 수 있다.

'권력 절제' 공화주의 근간 위협

그런 점에서 조 전 장관과 정 변호사의 행동 이상으로 이를 바라보는 주변 인식도 문제다. 자녀 입시를 돕기 위해 인맥과 전문지식을 동원하는 것이 도를 넘더라도 눈감아주는 관행이 사회 엘리트 전반에 퍼져 있는 건 아닌지 우려되는 부분이다. 문제 행동으로 두 사람의 자녀가 달성한 의전원 입학과 서울대 진학은 한국 학부모라면 누구나 꿈꾸는 목표다. 그 목표까지 가는 길이 부모의 직업에 따라 달라진다면 교육제도 전반에 대한 신뢰가 허물어질 수밖에 없다. 부모로부터 좋은 머리와 외모를 물려받고, 훌륭한 학업 여건까지 제공받은 젊은이들이 추가로 ‘아빠 찬스’까지 누려야 하는지 국민은 의아해한다. 엘리트들이 자신의 자녀를 위해 가능한 수단을 모두 동원하는 세상에서 많은 사람이 아이 낳기를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이 같은 부덕이 절제되지 않으면 시스템 전반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져 공화국을 위기로 몰아넣을 수 있다. 알렉시 드 토크빌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말했다. “시민의 부패와 부덕은 공화국을 멸망으로 이끄는 첩경이다. 시민들은 사익의 충족이 공화적 삶이라는 전제하에 조건부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핫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