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오늘] 北 '강진 피해' 튀르키예 위로…적국에서 무기거래국으로

북한이 6·25전쟁 당시 유엔군의 주력이자 적국이었던 튀르키예에 최근 강진 피해를 위로하는 전문을 보내 눈길을 끈다.

조선중앙통신은 최선희 외무상이 튀르키예에서 대규모 지진으로 많은 인적 및 물적 피해가 발생한 것과 관련해 메블뤼트 챠부쇼글루 외무상에게 8일 위문 전문을 보냈다고 밝혔다. 최 외무상은 피해자들과 유가족들에게 동정과 위문을 표시하면서 튀르키예 정부와 국민이 지진 피해를 하루빨리 복구하고 피해지역 주민 생활을 안착시키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사실 북한은 6·25 때 적국이었던 튀르키예와 오랜 기간 사이가 좋지 않았다.

튀르키예는 6·25 전쟁 당시 유엔군 가운데 네 번째로 많은 2만2천여명을 파병하고 741명이 전사해 파병국 중 두 번째로 많은 전사자를 내 한국의 영원한 '형제국'으로 불린다. 튀르키예 여단은 1951년 1월 용인 금양장리에서 북한군의 혈맹인 중국군이 지키던 151고지를 향해 착검 돌격해 적을 격퇴함으로써 '백병전의 튀르키예군'이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당시 중국군 사상자는 1천900여 명이었지만 튀르키예군 사상자는 100여 명에 그쳤다.

6·25 전쟁에서 용맹을 떨친 튀르키예와 북한은 휴전 이후로도 상당기간 서로 거리를 뒀다. 북한은 1972년 베이징(北京) 주재 튀르키예 대사를 통해, 1979년 주이란 튀르키예대사를 통해 수교 교섭을 제의했지만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1983년 12월에는 북한과 튀르키예간 민간무역의정서가 폐기되기도 했다.

양측 관계는 휴전 후 40여년이 지난 1993년 3월 양국간 민간 친선협회가 결성된 것을 계기로 개선되기 시작한다. 같은 해 9월 튀르키예 노동당 대표단이 평양을 방문해 조선노동당과 친선협력 증진을 다짐했다.

민간협회나 좌파 정당간 교류를 이어오던 북한과 튀르키예는 2001년 1월 15일 중국 베이징(北京)주재 튀르키예 대사관에서 상호 승인과 대사 임명을 위한 양해각서(MOU)에 서명했으며 6월 27일 정식 수교가 이뤄졌다.

2004년에는 북한과 튀르키예 간 첫 공식 협정인 경제ㆍ통상협정이 체결됐다.

이후 두 나라는 10여년간 주요 행사나 재해 때 축하, 위로 전문을 교환하는 등 우호적인 관계를 이어간다.

2007년 5월 튀르키예·북한간 첫 정책협의회가 개최됐으며 2011년 9월 수교 10주년을 계기로 제2차 정책협의회가 열렸다.

그러다 2017년 1월 튀르키예 동부 국경지방 쿠르드계 무장조직 '쿠르드노동자당'(PKK) 은신처에서 휴대용 지대공미사일 'HT-16PGJ' 등 북한산 무기가 발견되면서 양측 관계가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튀르키예 정부는 그해 3월 자국 기업이나 개인에게 북한의 핵이나 미사일 프로그램 관련 자금과 경제적 자원 제공을 금지하고 핵·미사일 프로그램과 관련된 인물이나 그 가족의 출입국을 막았다.

또, 북한을 오가는 모든 화물을 항만과 공항에서 검색하고 핵·미사일 프로그램에 전용될 수 있는 제품, 재료, 장비, 기술의 구매와 판매, 이전도 금지했다.

그러나 이후로도 민간을 통한 무기 거래가 간간이 이어져 2018년 10월 튀르키예 기업 시아 팰컨이 무기 및 관련 제품, 사치품을 북한과 직·간접적으로 교역한 혐의로 튀르키예인 2명과 함께 미국 재무부로부터 제재를 당하기도 했다.

작년 11월에는 튀르키예가 연초부터 증가하고 있는 북한의 탄도 미사일 발사 시험을 규탄한다며 긴장을 야기할 수 있는 행동을 자제하도록 촉구하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한편 북한은 튀르키예에 위로 전문을 발송하기 전날인 7일 같은 지진 피해를 본 시리아에 먼저 위로 전문을 보내고 발송자도 김정은 국무위원장으로 격이 높아 시리아를 우대하는 모습을 보였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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