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월드컵 우승 vs 아르헨티나 정치

‘축구의 신’ 리오넬 메시(아르헨티나) 발끝에서 나온 전반전 첫 득점, 2-0으로 끌려가다 후반 들어 1분여 사이에 터진 ‘신성(新星)’ 킬리안 음바페(프랑스)의 두 골, 그리고 연장전 후반에 나란히 한 골씩 주고받은 끝에 펼쳐진 승부차기까지…. ‘각본 없는 드라마’라는 말이 이보다 더 잘 맞을 수 있을까. 어제 새벽 펼쳐진 카타르월드컵 아르헨티나-프랑스 결승전 이야기다. 메시는 우승컵과 함께 ‘골든볼’을 품에 안았고, 결승전 해트트릭을 기록한 음바페는 득점왕에 올랐다.

언제나 우승 후보로 꼽혔던 아르헨티나의 월드컵 우승은 36년 만이다. 그만큼 한이 깊었다. 이번 대회 조별리그 첫 경기에선 피파랭킹 51위 사우디아라비아에 충격패까지 당했다. 그럼에도 이후 우승까지 무패 행진을 벌인 여러 이유가 있다는 게 세계 축구계의 평가다. 리오넬 스칼로니 감독(44)의 자율적·실리적인 축구, 디에고 마라도나에 비해 소심하고 열정이 부족하다는 평을 받았던 메시의 변신과 선수들 간 친밀한 관계, 예전과 달리 경기 내내 강한 압박과 빈틈없는 패싱 플레이를 구사한 조직력과 팀워크, 번지르르한 말보다는 목표(골)에 집중하는 지향성…. 이 덕분에 아르헨티나는 원맨팀(one-man team)이라는 오명을 벗고 원팀(one team)으로 거듭났다.하지만 아르헨티나의 국격은 축구 실력만큼 높지 않다. 한참 뒤처진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는 18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 정치인들은 이런 축구대표팀으로부터 배우라고 충고했다. 아르헨티나 국민은 올해 기록적인 가뭄과 100%에 달하는 물가상승률로 고통받고 있다. 정치와 경제가 모두 혼란스러운 가운데 두 차례 대통령을 지낸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부통령은 부정부패 혐의로 징역 6년형을 선고받았다. 자유주의 성향의 대통령과 좌파 성향 부통령은 몇 달째 대화도 나누지 않을 만큼 분열상이 심각하다. 포퓰리즘 위주의 정책을 펴온 좌파 정치인들은 민간기업을 적대시하고, 12개의 환율과 다수의 가격 및 통화가 통용될 정도로 경제정책은 아마추어적이다. 월드컵 우승이라는 경사에도 해외 언론들로부터 조롱받는 아르헨티나 정치가 처연하다. 우리 정치권은 과연 어떨지….

서화동 논설위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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