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전략만 잘 짠다면…'조직 부적격자'도 인맥왕 될 수 있다

인생을 바꾸는 관계의 힘

마리사 킹 지음 / 정미나 옮김
비즈니스북스 / 392쪽|1만7000원

15년 사회관계망 연구한 저자의
'인맥 쌓는 방법' 알려주는 책

'발 넓은 사람'의 세 가지 유형
여러 사람들과 친한 '마당발형'
사람과 사람 이어주는 '중개자형'
끼리끼리 뭉치는 '소집자형'
1955년 미국 드포대 2학년생 버논 조던은 컨티넨털 보험사에 영업 인턴직 면접을 봤다. 최종 합격했고 그해 초여름 애틀랜타 지부로 출근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하지만 조던이 자신이 가진 가장 좋은 정장을 골라 입고 출근했을 때 관리자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유색인이란 얘기는 못 들었어요.”

결국 조던은 그곳에서 일하지 못했다. 대신 전(前) 애틀랜타 시장 로버트 매덕스의 운전기사로 들어갔다. 시간이 흘러 조던은 자신의 80세 생일을 상류층 인사들의 휴양지인 마서즈 빈야드 섬에서 보냈다. 빌과 힐러리 클린턴 부부, 배우 모건 프리먼, 켄 셔놀트 아메리칸익스프레스 최고경영자(CEO) 등이 축하해주러 왔다.

지난해 세상을 떠난 조던은 유명한 민권 운동가이자 정계의 실력자였다. 수십 년 동안 여러 대통령의 ‘절친’이 되면서 뉴욕타임스로부터 ‘퍼스트 프렌드’란 별명을 얻었다. 재계 연줄도 상당해 다우존스, 제록스, 캘러웨이골프 등 9개 기업에서 이사로 일했다.

조던은 어떻게 정·재계를 아우르는 엘리트 집단의 핵심 인사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을까. 마리사 킹 미국 예일대 경영대학원 조직행동학 교수가 쓴 <인생을 바꾸는 관계의 힘>은 그 비결을 파헤친다. 흔히 말하는 ‘인맥 쌓는 법’에 관한 책이다. 가벼운 자기계발서는 아니다. 사회학자로 15년 넘게 사회관계망을 연구한 저자는 탄탄한 이론을 토대로 인맥을 구축하는 방법을 풀어낸다.책은 인맥이 두터운 사람을 크게 ‘마당발형’ ‘중개자형’ ‘소집가형’으로 분류한다. 마당발형은 뛰어난 사교성으로 여러 사람과 두루두루 친하다. 평균적으로 아는 사람 수가 약 600명인데, 마당발형은 6000명이 넘기도 한다. 이들은 남의 마음을 잘 읽는다. 1 대 1 교류에 능통하고 즉각적으로 유대를 맺는 법을 안다.

저자는 어느 정도 유전적인 영향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유전적 요인이 46%를 차지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매력적인 외모와 유연한 성격을 갖고 있으면 마당발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들이 모르는 노력도 있다. 조던은 지인들의 연락처와 정보를 꼼꼼하게 기록했다. 남의 얘기를 잘 듣고, 잘 베풀었다. 많은 인맥을 관리하는 건 상당한 에너지가 소모되는 일이다.

중개자형은 따로따로 떨어진 ‘인맥의 섬’을 잇는 사람이다. 각기 다른 영역에서 나오는 정보와 아이디어를 모을 수 있기 때문에 정보 축적만 따지면 효율적인 인맥 쌓기 유형이다. 다만 이들은 조직 부적격자 사이에서 나올 때가 많다. 정해진 승진길을 따라 출세한 사람보다 이런저런 곳을 떠돈 인물이 중개자형 인맥을 쌓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단점은 자기만의 단단한 집단이 없다 보니 공격받기 쉽다는 것이다. 갈등을 빚는 두 집단을 중재하려 할 때 ‘박쥐’ 노릇을 한다고 오해받기도 한다.소집자형은 친구의 친구까지 친하게 지내는 촘촘한 인맥망을 가진 유형이다.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끼리 뭉치는 형태다. 강한 유대감을 갖고 있고, 흉금을 털어놓고 이야기한다. 다만 ‘끼리끼리’ 방식이라 다양성이 부족해질 수 있다. 좀처럼 의견 차이가 표면화되지 않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잘 유입되지 않는다.

저자는 인맥이 중요하지만, 인맥 쌓기가 그 자체로 목적이 돼선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의도적으로 인맥을 쌓기 위해 접근하는 사람은 오히려 반감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남에게 베푸는 마음을 가져야 하고, 진심으로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석유왕 존 D 록펠러의 손자이자 체이스내셔널은행(현 JP모간체이스)을 경영했던 데이비드 록펠러는 찾아온 손님들에게 어릴 때의 발표회부터 부모님의 건강 상태에 이르기까지 시시콜콜한 인생사를 물어봤다. 이런 질문이 상대방을 기분 좋게 해주거나 경계심을 풀어준다는 걸 잘 알았기 때문이다.

책은 직장에서 관계를 쌓으려면 화장실이나 휴게실 가까운 곳에 책상을 두라는 조언도 건넨다. 사람이 몰리고 자주 왕래하는 곳이어서다. 저자는 인맥을 쌓는 데 왕도는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몇 가지 원칙을 제시한다. “따뜻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물리적으로 사람들과 만나야 한다. 자신의 시간을 기꺼이 내어 상대에게 관심을 쏟아야 한다”고. 특별한 비법을 기대하고 책을 든 사람이라면 실망할 수도 있겠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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