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순철의 글로벌 북 트렌드] 과학이 발달해도…공동체에 종교가 꼭 필요한 이유

민주주의는 종교가 필요하다

공감·배려…'공명 이론' 내세운 교수
현대사회의 '천덕꾸러기' 된 종교에
"경청과 존중 위해 꼭 필요한 존재"
종교는 현대 사회에서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했다. 공동체 생활을 중요하게 여기던 종교는 감염병 시대를 겪으면서 새로운 위기에 직면했고, 사람들은 이기주의와 상업주의로 전락한 종교집단을 향해 증오의 눈초리까지 보내고 있다. 종교는 과연 비난받아 마땅한가. 방향을 잃은 종교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빅데이터와 알고리즘이 선택과 결정의 기준이 돼버린 현대인들의 삶 가운데 종교의 의미와 역할은 무엇인가.

최근 독일에서는 <민주주의는 종교가 필요하다(Demokratie braucht Religion)>란 책이 출간돼 화제다. 80쪽에 불과한 이 책은 올 1월 독일 뷔르츠부르크에서 열린 강의를 토대로 한다. 저자는 예나대 사회학 교수이자 ‘공명 이론’으로 유명한 하르트무트 로자다. 로자 교수는 가속화하는 세계에 대한 해결책으로 공명이란 해결책을 제시했다.공명이란 진동수를 같게 만들어 울림통을 통해 소리를 내는 현악기의 원리를 말한다. 로자 교수는 공명 현상이 인간 사이에도 적용될 수 있으며 ‘다른 사람의 입장이 돼 생각해보는 능력’이라고 정의했다. 누군가 내 말에 귀를 기울일 때, 내가 상대방에게 존중받고 있고 말이 통한다는 걸 경험할 때, 진심으로 서로 공감하고 배려할 때, 우리는 서로 같은 주파수 안에 있다고 느낀다. 그것이 바로 인간 사이의 공명이다.

“종교가 없다면 현대 사회는 어떻게 될까? 현대 사회 구조에서 종교의 위치는 어디일까? 종교는 글로벌 경쟁시장에서 성장을 방해하는 시대착오적인 사회악일까? 개인적으로만 추구하고 공개적으로는 침묵해야만 하는 미신과 같은 역할에 불과한 걸까?”

이런 종교에 대한 다양한 회의적인 질문에 로자 교수는 답한다. 점점 더 빠른 속도로 돌아가고 보다 공격적으로 변하는 사회에서 종교의 가장 큰 역할이 공명에 있다고 강조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공명이 사라지면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지 상상해보자고 제안한다. 정확하고 예리하게 현대 사회의 모습을 분석하며, 수백 년 동안 이어온 종교 사상의 저장고에 축적된 가치가 폄하되고 훼손될 때 어떤 일들이 발생할 수 있는지 진단한다.
지혜의 왕 솔로몬이 구한 것은 ‘듣는 마음’이었다. 로자 교수는 그 듣는 마음이야말로 갈등과 혐오로 얼룩진 현대 사회를 구원할 수 있는 치료제라고 설명한다. “예전에 저는 모든 사람이 들을 수 있는 목소리를 가지게 될 때 민주주의가 비로소 작동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저는 더욱 확신하게 됐습니다. ‘들을 수 있는 목소리’뿐 아니라 ‘들을 수 있는 귀’도 중요합니다. 상대방이 정적이거나 바보이거나 나와 다른 사람이라고 해서 입을 다물게 해서는 안 됩니다.”

로자 교수는 종교의 필요성에 대해 이렇게 얘기한다. “우리 사회가 종교를 잃는다면, 이런 형태의 관계적 가능성을 잊어버린다면, 공동체로서의 사회적 기능은 마비될지도 모릅니다. 누군가 내게 ‘우리 사회에 여전히 종교나 교회가 필요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언제나 ‘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홍순철 BC에이전시 대표·북칼럼니스트

핫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