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핵심 반도체기업 임원 40명 이상이 미국 국적…'진퇴양난' [강현우의 중국주식 분석]

일자리냐 美시민권이냐
중국 선두 반도체 장비업체 중웨이(AMEC)
'임원 자리냐 미국 시민권이냐.' 미국의 중국에 대한 반도체 제재 종합판 때문에 이런 선택의 기로에 놓인 미국 국적의 중국 반도체 기업 임원이 40명이 넘는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미국 국적자들이 업무에서 손을 떼면 중국의 첨단 반도체 개발이 더욱 지연될 것으로 전망된다.

WSJ이 주식시장에 상장한 중국 반도체 업체의 공시와 공식 홈페이지 등을 조사한 결과 16개 업체 43명의 임원이 미국 국적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 최고경영자(CEO)나 회장 등 'C레벨(중역)'급인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 7일 미국 기업이 중국 기업에 첨단 반도체 장비 수출을 사실상 금지하는 수출통제 방안을 내놨다. 이 조치는 미국인이나 영주권자, 미국 거주자가 중국의 반도체 기업을 지원하는 것도 미 정부의 허가를 받도록 했다. 영주권자나 거주자까지 포함하면 중국 반도체 기업에서 근무하는 통제 대상자가 더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의 조치 이후 KLA, 램리서치 등 미국 반도체 장비 기업들이 중국 고객사 현장에서 직원들을 철수시켰다. 중국 장비업체인 베이팡화촹, 네덜란드 노광장비업체 ASML 등도 중국에서 미국 직원의 업무를 중단시켰다.

WSJ는 미국 국적의 중국 기업 임원들이 대부분 실리콘밸리의 미국 반도체 기업에서 수년 간 일한 뒤 중국으로 이동했다. 특히 이 중 일부는 2008년부터 중국이 해외 고급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 추진한 '천인계획'에 선발돼 중국행을 선택했다. 중국은 천인계획으로 영입한 인재들의 영업비밀 침해 의혹이 제기되자 2012년 자국 인재까지 포함한 '만인계획'으로 전환했다. 그 이후에도 중국 반도체 업체들은 미국에서 경력을 쌓은 중국계 인재를 계속 영입하고 있다. 중국 반도체 업계를 이끄는 대표적 미국인으로는 장비업체인 중웨이(AMEC)를 창립한 제럴드 인(인저야오) 회장(78)이 있다. 중국에서 태어나 석사까지 받은 그는 1980년 미국으로 건너가 박사학위를 받은 뒤 인텔,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 등에서 20년 간 일했다. 2004년 중국으로 다시 돌아와 중웨이를 창립했다. 중웨이는 현재 중국에서 베이팡화촹과 함께 중국 장비업계의 양대 축으로 불린다.

중웨이에는 고위 임원과 핵심 연구원 6명, 다수의 엔지니어가 미국인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사는 최근 연간보고서에서 지난해 중국 정부로부터 5000만달러 이상의 보조금을 받았다고 밝혔다.

또 메모리반도체의 일종인 노어(NOR)플래시 세계 3위인 자오이창신(기가디바이스)의 슈칭밍 부회장과 청타이이 이사, 대만 TSMC에 증착기를 공급하는 장비업체 신위안웨이(킹세미)의 천싱롱 전무도 미국 국적자다. 이 회사들은 투자자들에 미국의 수출통제 영향을 분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컨설팅사 컨트롤리스크의 데인 캐머러 글로벌 리스크부문 대표는 "중국 기업에 미국인 인재를 활용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중국 기술 개발에 직격탄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중국 기업의 다수 임원이 미국 시민권 또는 영주권과 직장 사이에서 선택의 기로에 놓일 것으로 내다봤다.

베이징=강현우 특파원 h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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