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범죄 우려만 키운 편의점 시트지 '탁상 규제'

"청소년 흡연 막는다" 1년간 시행
정책 효과 없고, 점주 부담 커져

박종관 유통산업부 기자
편의점 통유리창에 뿌연 시트지가 도배된 지 1년이 지났다. 보건복지부가 작년 7월 “매장 내 담배 광고가 밖에서 보이면 처벌하겠다”고 엄포를 놓으면서 일어난 변화다.

편의점 담배 광고 규제는 도입 당시부터 말이 많았다. ‘유리창을 막아 광고를 가린다고 흡연율이 떨어지겠느냐’는 기초적 의문이 제기된 건 물론이다.‘야간에도 운영하는 편의점 특성상 유리창이 시트지로 가려지면 범죄 위험이 커질 것’이라는 우려도 이어졌다. 하지만 업계의 이런 지적에도 복지부는 나 몰라라 규제를 강행했다.

1년이 지난 뒤 우려는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 5월 서울 신촌동의 한 편의점으로 술에 취한 남성에게 쫓기던 한 여성이 뛰어 들어왔다. 점주는 남성과 몸싸움을 벌이며, 길 가던 행인들에게 “도와달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행인들은 시트지로 뒤덮인 편의점 내부 사정을 알지 못했다. 한동안 이어진 실랑이는 우연히 한 손님이 편의점에 들어오자 이를 본 남성이 달아나면서 허무하게 끝났다. 이 점주는 “매장 안이 훤히 보였다면 애초에 멱살잡이가 벌어질 일도 없었을 것이고, 벌어지더라도 지나가던 시민들의 도움으로 금방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많은 이들의 예견대로 이 규제는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질병관리청이 지난 4월 발표한 ‘제17차 청소년건강행태조사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청소년 일반담배 흡연율은 4.5%로 전년(4.4%)과 큰 차이가 없었다. 편의점 등에서 담배 구매를 시도한 학생이 큰 노력 없이 구입에 성공한 비율을 뜻하는 구매 용이성은 2020년 67.0%에서 지난해 74.8%로 되레 대폭 늘었다.

모든 규제는 선의로 포장된다. 편의점 담배 광고 규제도 마찬가지다. 도입 당시 ‘청소년 등 국민의 건강을 위해 해로운 담배 광고가 최대한 눈에 띄지 않도록 하겠다’는 선한 의도가 강조됐다.

하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의도는 담배만큼이나 해롭다. 담배 광고를 막기 위해 유리창을 뒤덮은 시트지는 점주와 아르바이트생의 안전을 위협하는 존재가 됐다. 유리창을 통해 밖을 지나다니는 이들에게 담배 이외의 다른 상품을 노출하는 마케팅 효과도 황당한 규제 탓에 더는 누리지 못하고 있다.

“편의점마다 시트지가 붙어 있는 걸 보면 화가 더 납니다. 우리는 쓸데없는 비용 들이고, 안전까지 위협받는데 이 규제를 만든 공무원은 얼마나 칭찬을 받았겠습니까.” 한 편의점 점주는 울화통을 터뜨렸다. 공무원들의 영혼 없는 탁상머리 규제가 불러온 불편을 국민이 대체 언제까지 감내해야 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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