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물 수출재개 합의 하루 만에…러시아, 오데사항 폭격

크름반도 인근 흑해서 미사일 발사
우크라이나·유엔과 합의 뒤통수
러시아군이 23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남부 주요 항구인 오데사항을 공습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등과 곡물 수출을 재개하는 협상을 타결한 지 하루 만에 벌어진 일이다. 이 때문에 국제사회에선 러시아를 규탄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남부 작전사령부는 이날 “러시아군의 칼리브르 순항미사일 네 발이 발사됐고 이 중 두 발이 우크라이나 오데사항의 기반 시설을 타격했다”고 발표했다. 나머지 두 발은 우크라이나 방공망에 의해 격추됐다고 설명했다.유리 이그나트 우크라이나 공군 대변인은 이날 오데사를 공격한 미사일이 크름반도(크림반도) 인근 흑해 군함에서 발사됐다고 밝혔다. 폭격으로 인한 사상자와 항구 피해 상황은 공개하지 않았다.

전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유엔, 튀르키예(터키)와 함께 우크라이나 주요 항구 세 곳을 통한 곡물 수출 합의안에 서명했다. 기뢰가 설치된 흑해에 안전항로를 마련해 곡물 및 비료 수출길을 열자는 게 주된 내용이다. 합의안은 향후 120일 동안 유효하며, 중재국인 튀르키예에 ‘합동 조정센터’를 만들어 곡물 수송선의 안전을 보장하기로 했다.

러시아군이 흑해 항구를 봉쇄하자 우크라이나의 곡물 수출 경로가 차단돼 전 세계 식량난이 심화한 데 따른 조치였다. 흑해는 우크라이나가 곡물의 90%가량이 운송한 핵심 수출로였다. 우크라이나 흑해 연안 항구에는 2000만t 이상의 곡물이 수출되지 못한 채 쌓여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출길이 막히자 우크라이나산 곡물 의존도가 높은 아프리카와 중동 지역의 식량난 위기가 고조됐다.우크라이나 정부는 약속을 위반했다며 러시아를 비판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의 폭격을 두고 “야만적인 행위”라며 “러시아의 합의 이행을 신뢰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올렉 니콜렌코 우크라이나 외무부 대변인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중재자인 유엔 사무총장과 튀르키예 대통령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고 비난했다.

국제사회도 규탄행렬에 동참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이날 성명을 내며 “식량난에 처한 세계 수백만 명의 고통을 덜어주려면 합의안 이행이 필수적”이라며 “(공습을) 명백히 규탄한다”고 강조했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도 “러시아는 세계 식량 위기를 심화시킨 책임이 있다”며 “식량을 세계에 공급하려는 노력을 약화시켰다”고 지적했다.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24일 텔레그램에 올린 글을 통해 “칼리브르 (순항)미사일들이 오데사항의 군사 기반시설을 파괴했다”며 “고정밀 미사일로 우크라이나군 경비정을 침몰시켰다”고 확인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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