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美 인권보고서

미국이 인권을 외교 정책의 중심에 두기 시작한 것은 베트남 전쟁과 워터게이트 사건 등으로 정치적·도덕적 이미지가 추락한 1970년대 초중반부터다. 1973년 민주당 주도로 대외원조와 수혜국의 인권을 연계하는 ‘해외원조법안’을 만들었고, 이 법에 근거해 미국 국무부가 1977년부터 매년 발간하고 있는 유엔 회원국 대상의 인권 실태 평가서가 바로 ‘연례 국가별 인권보고서’다. 각국 미국대사관 직원들이 현지에서 얻은 정보를 토대로 작성해 미 의회에 보고하고, 외부에도 공개한다.

인권보고서는 미국 정부의 외교, 대외 경제 정책의 중요한 근거 자료로 활용된다. 언급된 국가들은 상당한 압박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 중요성은 조 바이든 행정부 들어 더욱 커졌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반작용으로 바이든 대통령이 인권을 외교의 핵심으로 재소환해서다.작년 보고서는 미국 역대 정부에서 작성한 인권보고서 중에서 가장 신랄하다는 평가다. 특히 한국은 동맹국임에도 불구하고 전례 없이 인권과 사회 부패에 대해 조모조목 가시 돋친 지적을 받았다. ‘표현의 자유 제약’을 언급하며 대북 전단 금지법을 적시했다. 또 ‘조국 일가 입시비리’와 윤미향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위안부 기금 유용’ 사건을 대표적 부패로 꼽았다. 성희롱도 중요한 사회문제였다고 하면서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 사례를 들었다. 이른바 진보정권이라고 하면서 북한 인권결의안 공동 제안국에는 3년 연속(올해로 4년째) 불참하고, 여권 인사들의 인권 침해에 대해선 ‘내로남불’로 일관한 문재인 정부를 바라보는 워싱턴의 시각이 그대로 투영됐다는 해석이다.

작년 상황을 다룬 올해 보고서에는 ‘조국 사례’가 3년 연속 단골 메뉴로 올랐고, 급기야 대장동 사건까지 대표 부패 사건으로 지목됐다. 보고서는 “화천대유가 (성남)시 당국자들과 공모하고 정치인들에게 뇌물을 제공했다는 혐의가 제기되고 있다”며 “화천대유와 관련 업체는 초기 투자의 1000배가 넘는 이익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고 했다.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에서 1000배 이익을 보장하는 대형 뇌물 사건이 터졌으니, 국제적으로도 망신살이 뻗쳤다. 내년 보고서에도 대장동 사건은 포함될 것이 확실시된다. 그나마 철저한 수사로 진상 규명과 관련자 처벌이 제대로 이뤄졌다는 내용이라도 포함되면 오명을 씻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윤성민 논설위원 smy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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