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언개혁 찬성" 줄잇는 해명…팬덤정치에 흔들리는 민주당

사진=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일부 강성 지지자들이 이른바 ‘검찰·언론개혁 반대 의원’ 명단을 서로 공유하며 해당 의원들에게 '문자 폭탄'을 보내 논란이 일고 있다. '블랙리스트'에 오른 의원들은 SNS를 통해' 검언개혁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잇따라 밝히며 해명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정치권에 따르면 이런 행동에 나서는 강성 지지자 상당수는 '개딸'(2030 여성 지지자)과 '개삼촌'(4050 지지자)을 자처하는 이재명 민주당 상임고문의 팬층인 것으로 알려졌다.

○팬덤정치에 흔들리는 與

민주당 정책 의원총회를 앞둔 지난 4일 이 고문의 팬카페 '재명이네 마을'을 포함한 친여 성향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민주당 현 국회의원 검언개혁(정상화) 찬성, 반대파 정리'라는 명단이 돌았다. 자신을 '개삼촌'으로 칭한 한 지지자는 '재명이네 마을'에 20여명의 이름이 담긴 명단을 올린 뒤 "개딸들을 총동원하고자 한다"고 썼다. 이 명단에는 김경협 전혜숙 김진표 오기형 우상호 오영환 신정훈 소병철 전해철 등 주로 친(親)이낙연계 인사들이 포함됐다. 또 과거 소신 발언으로 이 고문 지지자들에게 '미운털'이 박힌 일명 '초선 5적'(이소영 전용기 장철민 오영환 장경태) 등도 이름을 올렸다. 지지자들은 이 명단에 오른 의원들에게 전화와 문자, 팩스를 돌리며 검언개혁 찬성을 촉구했고, 커뮤니티에는 문자 전화를 했다는 '인증글'이 쏟아지기도 했다.

이같은 공격에 집단행동의 대상이 된 일부 의원들은 SNS에 '검언개혁에 반대한 적이 없다'는 호소문을 직접 올려 해명에 나섰다. 우상호 의원은 SNS에 "저는 검·언 정상화에 찬성한다”며 “작성자 불명의 부정확한 명단으로 의도치 않은 비난을 당하고 있어 우리 당 의원들이 많이 힘들다”는 글을 올렸다. 이광재 의원도 SNS에 “제가 검찰, 언론개혁 반대 의원 명단에 포함돼 인터넷에 돌고 있다고 하는데, 명백한 오해”라며 “지난 대선, 저는 검찰 공화국으로 회귀할 수 없다고 반복해서 목소리를 높였다”고 적었다. 이용선 의원은 “여러 오해가 있으신 듯한데 저는 검·언개혁에 반대한 적이 한 번도 없다”며 “검·언개혁과 정치개혁 그리고 민생회복과 국민통합을 위한 과제들을 해결하는데 전력을 다하겠다"고 썼다. 신정훈 의원도 “누가 무슨 의도로 사실이 아닌 자료를 유포하는지 모르겠지만 저의 입장과는 전혀 다르다”고 입장을 밝혔다.

○아이돌 굿즈까지 등장…이재명 팬덤의 결집

20대 대선이 끝났지만 당내 토론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민주당이 강경 지지층에 휘둘리고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특히 이 고문 '팬덤'을 중심으로 결집은 더 강화되고 있는 모습이다.

지난달 대선 직후 개설된 이 고문 팬카페 '재명이네 마을'은 카페 개설 불과 한 달 만에 회원수가 18만명을 넘어섰다. 지지자들은 팬카페에서 이 고문의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거나, 이 고문, 민주당, 문재인 대통령 부부를 비판하는 야당 인사들이나 언론의 보도를 반박하는 자료를 게시하는 등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아이돌 팬덤에서 주로 만들어지는 팬아트나 굿즈 제작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일부 지지자들은 집회 현장에서 배지, 열쇠고리 등 이 고문 관련 굿즈도 판매했다.

이 고문은 지난 2일 팬카페이 직접 글을 올려 팬카페 대표격인 '이장'직을 수락한다고 알렸다. 이 고문은 "사실 고민 많았는데 투표까지 해 결정했으니 (이장직을) 거부할 수가 없잖아”라며 “마을 주민 여러분의 봄날 같은 따스한 사랑에 너무 감사하잖아”라고 했다. 그러면서 “개딸, 냥아, 개삼촌, 개이모, 개언니, 개형 그리고 개혁 동지와 당원동지 시민 여러분 모두 모두 깊이 사랑합니다”라고 썼다. 이 고문은 자신을 응원하는 2030 여성들을 친근감의 표시로 ‘개딸’이라 부르고 있다. ‘개딸’은 강아지처럼 천방지축인 딸을 친근하게 일컫는 말로, 드라마 '응답하라 1997' 등에서 유래했다.

○2030女 중심 정치인 팬덤의 형성

정치 팬덤 현상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과거 '팬덤'이라는 단어가 없었을 때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맹렬 지지층은 상당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노빠' 등으로 인기를 누렸다. 특히 이들은 기득권 정치세력으로 권력이나 배경을 가지지 못했던 정치인을 발견하고, 후원 세력이 돼 대통령으로 만드는 일에 일조했다. 정치인의 삶에 자신을 투영해 민주화를 갈망했던 세대가 주를 이뤘다. 그러나 이 고문을 향한 팬덤 현상은 대선 패배후 나타난 것이라 이례적이다.

또 2030 젊은 여성층이 팬덤의 주축이라는 점도 특징이다. 실제 지난달 대선 이후 2030 여성 지지자들의 민주당 입당 신청이 급증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민주당에 따르면 3월 10~11일 이틀간 온라인 입당자만 1만여명에 달했고 이 가운데 여성이 80%, 2030 여성이 절반 이상이었다는 설명이다. 이에 대해 박지현 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은 "2030 여성들이 분열과 갈등에 맞서 포용과 통합의 정치를 대한민국에 심는 주역으로 나서고 있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대선에서 투표로 이 고문을 뽑긴 했어도 조용한 지지자에 가까웠던 이들이 선거를 통해 정치적 효능감을 느꼈다는 분석도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여성가족부 폐지 등을 추진하기로 하면서 여성 정책에 대한 반감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분노의 창구인 동시에 이해관계 관철의 창구로 이재명 상임고문을 생각하는 것 같다"며 "여성 정책 후퇴에 대한 우려가 여진으로 작동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發 '젠더 갈라치기' 우려도

다만 과한 팬덤 정치에 대한 비판이 꾸준히 있어 왔듯 정치 문화를 후진적으로 만들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정치에 대한 열망이 정치인 개인에 대한 우상화나 무비판적 응원으로만 수렴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권력을 위임해 정치인에게 맞기는 게 대의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인데, 과한 팬덤은 국민이 정치인에게 자발적으로 종속되는 위치로 만들 수 있다는 지적이다.

또 강성 지지층에 갇혀 일반 대중을 외면할 가능성도 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윤석열 당선인도 이번 대선에서 보수치고 2030 여성에게 높은 지지율을 받았다"며 "이재명 개딸이 젊은 여성층을 절대적으로 대변할 수는 없단 얘기"라고 지적했다. 민주당 주도의 '젠더 갈라치기'가 될 것이란 비판도 제기된다.

설지연/전범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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