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현의 시각] '아몰랑 정부'

백승현 경제부 차장·좋은일터연구소장
‘아몰랑.’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당시 한국 사회에서 유행했던 단어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한 여성 네티즌이 SNS에서 사용한 말이지만 당시 메르스 사태 속에 국민의 불안감과는 거리가 멀었던 방역행정, 특히 여성인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화법이나 행보가 민의와는 동떨어져 있다는 비판과 함께 ‘여성 비하’의 의미로도 통용된 단어다. 그러다 보니 여성단체 등이 반발했고, 이후 불필요한 젠더 갈등을 유발한다는 자성의 목소리와 함께 지금은 거의 사용되지 않고 있다.

택배노조 파업·원청 점거에도

그로부터 7년, 새삼스레 기억의 저편에서 이 단어를 소환하게 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바로 택배노조 사태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택배노조는 지난해 12월 28일 운송 거부에 들어간 이후 두 달 가까이 파업 중이다. 이달 10일에는 CJ대한통운 본사를 기습점거해 13일째 농성을 벌이고 있다.

택배노조는 파업 이유로 CJ대한통운이 지난해 6월 체결한 사회적 합의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사회적 합의에 따라 택배비를 개당 170원 인상하고 인상분은 분류작업 제외 등 택배기사 처우 개선에 최우선으로 활용하기로 했는데 택배비 인상에 따른 초과이익 대부분을 CJ대한통운이 가져갔다는 주장이다. 반면 CJ대한통운은 실제 택배가격 인상분의 절반을 택배기사에게 수수료로 지급하고 있는데 노조가 실적 발표에 나온 숫자를 잘못 해석하고 있다고 반박한다.

어느 쪽 주장이 맞는지는 따져보면 될 일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와 별개로 ‘불법행위’라는 변수가 등장했다는 점이다. 택배노조는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겠다며 물리력을 동원해 CJ대한통운을 ‘침탈’했다. CJ대한통운은 노조를 고소했다. 그러자 택배노조는 CJ대한통운의 핵심 터미널인 경기 광주시 곤지암메가허브 진입을 시도하고 롯데·한진택배 등과 연대파업을 벌이겠다며 ‘싸움판’을 키우고 있다.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손을 놓고 있다. 아니 손은커녕 눈을 감고 귀도 닫고 있다.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는 지난달 말 택배현장 불시점검 결과 사회적 합의 이행 정도가 ‘양호’하다면서도 택배비 인상분 배분 이슈는 노사 문제라 개입하기 어렵다는 어정쩡한 태도를 보였다. 불법행위 고소장을 접수한 경찰은 한술 더 뜨고 있다.

정부·국회·법원 모두 나몰라라

서울경찰청장은 지난 14일 기자간담회에서 “노사 문제로 이해하고 판단하고 있다”며 “기본적으로 노사 간 대화로 해결하고, 택배노조가 자진퇴거할 수 있도록 설득하고 있다”고 했다. 언제부터 경찰이 노사관계 담당이었는지 모를 일이다. 노사관계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는 내부적으로 ‘타인의 건물을 무단침입한 불법행위’라고 판단하면서도 누가 들을까 눈치만 보는 모양새다.

대선 후보들도 마찬가지다. 여야 할 것 없이 표 계산에 바빠 이렇다 할 분명한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다. 법원은 또 어떤가. 2020년 2월 대구지방법원 김천지원에서 물류회사(원청)의 사용자성 판단이 처음 나온 이후 판결마다 엇갈린 결과가 나오고 있지만 2심 판결은 줄줄이 미뤄지고 있다. CJ대한통운이 택배노조의 교섭 요구에 응해야 하는 당사자인지 아닌지는 이번 사태의 핵심이다.

정부는 사태 해결을 위해 하루빨리 나서야 한다. 사회적 합의 이행 여부 확인은 물론 불법행위에 대한 책임도 물어야 한다. ‘아몰랑 정부’라는 비아냥은 끝내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의 씨앗을 잉태했던 2015년 그해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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