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현의 시각] '연차 26일' 법과 상식 사이

백승현 경제부 차장·좋은일터연구소장
정부가 지난달 16일 연차유급휴가에 관한 기존의 행정해석을 변경했다. 2006년 9월 관련 해석을 변경한 지 15년 만이다. 변경된 행정해석은 일정 기간 근로의 대가로 얻은 연차휴가나 휴가를 사용하지 못한 경우 연차수당 청구권은 해당 기간 근로가 끝난 다음날이 돼야 발생한다는 게 골자다. 이번 행정해석 변경은 지난해 10월 대법원이 1년 계약직 근로자에게 최대 26일의 연차수당 청구권이 있다는 정부의 해석이 틀렸다는 판결을 내놓은 데 따른 후속조치다.

고용노동부는 2006년부터 ‘1년간 80% 이상 출근한 근로자에게 주어지는 15일의 연차휴가’에 대해 딱 1년만 근무하고 그만두더라도 2년차에 예정된 15일의 연차휴가 수당 청구권이 있다고 해석하고 현장 근로감독관들에게 지침을 내려왔다. 해당 지침은 2017년 11월 근로기준법을 개정하기까지 큰 문제 없이 작동해왔다. 법 개정 전까지는 근로기준법 제60조 3항에 따라 최초 1년간 사용한 유급휴가일수를 2년차에 예정된 15일에서 제외했기 때문이다.

무리한 연차 지침 바로잡았지만

그러다가 2017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저연차 근로자의 휴식권을 보장·강화하겠노라며 해당 조항(제60조 3항)을 삭제했다. 이에 따라 1년 계약직 근로자도 2년차 근무에 상관없이 최대 26일의 유급휴가권 또는 연차수당 청구권을 갖게 된 것이다. 근로자 휴식권 보장이라는 선한 취지만 알려진 상태에서 자영업자 등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은 날벼락을 맞았다. 1년 근로계약을 마치고 퇴사한 직원들이 퇴직금 외에 최대 26일치의 연차수당을 내놓으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근로감독관 지침에 따라 마지못해 수당을 내준 소상공인들이 “1년만 일하고 나간 직원에게 26일의 휴가권이 있다는 게 말이 되느냐” “일은 12개월 했는데 급여는 14개월치를 주는 꼴”이라는 아우성이 터져나왔다.

소상공인들의 아우성에 정부가 4년 만에 ‘백기’를 들었지만 아직 논란이 완전히 가신 것은 아니다. 바뀐 정부 행정해석에 따르면 딱 1년을 일하고 그만둔 사람은 수당 청구권이 최대 11일이고, 1년에 하루를 더해 366일 근무한 사람은 최대 26일의 수당 청구권이 생긴다. 하루 차로 최대 15일의 수당 청구권 차이가 발생하는 건 불가피한 ‘경계선’ 설정의 문제로 차치하더라도, 휴가라는 제도의 취지에 관한 문제는 여전히 논란거리다. 즉 물리적으로 쉴 수 있는 날이 없는데, 그 휴가를 사용하지 못했다고 해서 돈으로 받을 권리가 존재하느냐는 얘기다.

퇴사했어도 수당 청구권은 인정

실제 대법원도 1년 계약직 근로자의 연차수당 청구권은 최대 26일이 아니라 11일이라고 판단하면서 그 근거로 휴식권의 취지를 판시했다. “연차휴가권은 전년도 1년간의 근로 대가라는 점과 연차휴가 제도의 목적은 근로자에게 일정 기간 유급으로 근로의무를 면제함으로써 정신적·육체적 휴양의 기회를 제공하고 문화적 생활의 향상을 기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듬해에도 근로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전제로 2년차에 15일의 유급휴가를 줘야 한다”는 게 대법원의 설명이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행정해석 변경을 두고 대법원 판결 취지를 무리 없이 반영한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대법원 판단에 대한 해석의 차이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더 이상 근무하지 않아 휴가를 쓸 수 없는데 그에 대한 미사용 휴가수당 청구권은 존재한다는 해석이 상식에 부합하는지는 의문이다. 법은 상식을 집대성한 것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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