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새해는 브람스 음악처럼

김동욱 문화스포츠부 차장
작곡가 요하네스 브람스의 음악은 흔히 엄숙하고, 장중하다는 평을 듣는다. 북독일 출신 특유의 묵직함에 내면으로 침잠하는 깊이가 남다르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을 두고 ‘어른들의 음악’(작곡가 아널드 쇤베르크)이라는 평이 나오는 이유다.

눈에 띄는 것은 브람스가 주요 작품마다 ‘묘한’ 지시문을 달아놨다는 점이다. 단순히 빠르게(알레그로)나 보통 빠르기(모데라토)로 주문한 경우는 드물다. 현악 6중주 1번 1악장에서 ‘알레그로 마 논 트로포(빠르게, 그러나 너무 지나치진 않게)’로 연주하라고 신신당부한 것이나 교향곡 1번 1악장을 ‘운 포코 소스테누토 알레그로(약간 끌면서 빠르게)’로 지정한 것처럼 극단으로 치우치지 않는, 때로는 소심하게 느껴지는 주문이 적지 않다.

숙고가 일군 '거대함'

웅혼하고 거대한 그의 음악들은 사실 이러기도 저러기도 힘든, 세심한 고려에 기반을 두고 있다. ‘빠르고 즐겁지만, 너무 지나치게 활기차진 않게 그리고 더욱 매우 빠르게(알레그로 지오코소 마 논 트로포 비바체-포코 피우 프레스토)’ 연주하도록 한 바이올린 협주곡 3악장, ‘더욱더 보통 빠르기로(몰토 피우 모데라토)’로 속도를 지정한 ‘비극적 서곡’이 대표적이다.

때론 이탈리아어 지시문만으론 성에 안 찼는지 모국어인 독일어로 ‘매우 흥분해서, 하지만 너무 서두르진 말고(Sehr aufgeregt, doch nicht zu schnell)’라거나 ‘적당히 움직임이 있게(Mßig bewegt)’라고 주문한다. 연주자로서 난감하긴 여전하지만 말이다.

흔히 장중하고 거대한 음악은 금관악기가 빵빵하게 소리를 내지르고, ‘포르티시모(매우 강하게)’로 총주를 하면 될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강경’ 일변도만으로는 진정으로 강한 음악, 깊은 소리를 만들어낼 수 없다. 밀고 당기고, 중용을 지향하고 양보를 감수하는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가 더 단단한 음향을 빚어내는 것이다.다사다난했던 2021년이 막을 내린다. 언제나 그렇듯 지나간 한 해를 되돌아보고, 앞으로 올 새해를 생각해본다. 창대했던 기대, 단단하기만 했던 각오에 비하면 막상 손에 쥔 결과물이 변변찮은 경우가 대다수의 삶일 것이다.

요행 꿈꾸지 말고 내실 다져야

사회적으로도 마찬가지다. ‘K방역’의 성과를 앞세워 금방이라도 벗어날 것 같았던 코로나19의 굴레는 날이 갈수록 더욱 심하게 삶을 옥죄어오고 있다. 올해는 좋아질까 고대했던 나라와 개인의 살림살이는 연말이 돼도 여전히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게 캄캄하다. 한국 사회의 발목을 잡던 ‘답답함’을 일소할 것으로 여겨졌던 대선전도 진흙탕 싸움이 진행되면서 국민의 정치 혐오만 키우고 있다.

이처럼 기대에 크게 못 미치는 결과가 반복되는 것은 노력보다는 허황한 기대를 앞세우고, 일확천금식 ‘한 방’으로 문제를 해결하길 바랐던 탓이 클 것이다. 음악으로 치면 ‘매우 강하게’만 연속으로 주문해 웅장한 소리를 빚고자 한 셈인데…. 의료 시스템을 차곡차곡 개선하지 못하고, 사회의 힘든 곳에 체계적인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고, 글로벌 경제 환경 변화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탓에 불협화음만 낸 것은 아닐까. 국민을 혹하게 하는 ‘빈말’만 앞세우는 정치권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목소리를 내지르지 않아도, 포르티시모를 남발하지 않아도 웅장한 음악을 만들었던 브람스처럼 2022년 임인년(壬寅年)에 내실을 다진 탄탄한 결과물을 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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