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령 18일 만에 해경이 숨졌는데…상사는 '경고' 조치만

업무 소외 호소하다 극단 선택…"징계 사유 없어 종결"
"직장 내 괴롭힘 때문에 사망한 게 분명한데도 가해자는 제대로 된 처벌조차 받지 않았습니다. "
업무 소외를 호소하다 극단 선택한 해양경찰관 A(34) 경장 유족의 하소연이다.

A 경장에게 업무를 지시했던 상사는 내부 감찰에서 징계에 해당하지 않는 '경고' 조치를 받은 것으로 22일 확인됐다.

경남 통영해양경찰서 소속 A 경장은 지난 2월 25일 오전 10시 15분께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조사 결과 A 경장은 2월 8일 근무지를 옮긴 뒤 업무 소외로 인해 힘들어하며 지인에게 심정을 털어놓고 인터넷 카페에도 글을 올렸다.

그는 "나를 투명인간 취급해 비참하다", "오전 7시쯤 출근해서 허드렛일만 하다가 밤 9∼10시쯤 퇴근한다", "내가 제일 잘하는 것은 사무실 거울 닦기, 후배들 쓰레기통 비우기, 커피 타기"라고 호소했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A 경장은 인수인계를 명목으로 전임자와 같이 일하면서 제대로 된 일거리를 맡지 못했다. 그는 상사에게 '혼자서 일하고 싶다'는 취지로 건의했으나 상사가 이를 거절했다.

결국 A 경장은 발령 3일 만에 업무 부적합 평가를 받으면서 업무 변경 논의 대상이 되는 등 궁지에 몰렸다.

경찰은 전임자와 합동 근무하는 인수인계가 통상적인 업무처리 방식이 아니며, 상사가 호의적이지 않은 태도로 A 경장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합동 근무를 계속 시킨 것은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고 결론내렸다. A 경장의 우울증이 스트레스로 발병해 악화했으며, 사망 원인에 직·간접적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봤다.

다만 가해자로 지목된 상사가 미필적 고의로 직권남용을 했다고는 단정할 수 없다며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가 없다고 판단해 수사를 종결했다.

경찰 수사가 종결하자 해경은 자체적으로 사실관계를 조사해 A 경장의 상사에게 '경고' 처분을 내렸다.

합동 근무는 A 경장이 자연스럽게 업무를 배우도록 하는 목적이었고, A 경장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한 사실이 없다는 이유였다.

이는 경찰 조사와 상반되는 내용이다.

A 경장의 유족은 "경찰이 수사해서 직장 내 괴롭힘과 부당한 처우가 있었다고 결론 내렸는데, 해경 내부 감찰은 이와 정반대로 나왔다"며 "'제 식구 감싸기'로 느껴져 받아들일 수 없고, 가해자에 대한 정당한 인사 조처가 내려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해경은 이에 대해 "경찰에서 무혐의로 사건을 종결했고, 자체 감찰 조사 결과에서도 징계 사유에 해당할 만한 사실을 확인할 수 없어 징계 없이 종결했다"며 "다만 재발 방지와 분위기 쇄신 차원에서 A 경장의 상사에게 감찰 처분(경고)하고 인사 발령했다"고 밝혔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으면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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