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수많은 '영어의 어머니'들을 만나다

언어의 탄생

빌 브라이슨 지음
박종서 옮김
유영 / 460쪽│2만원
영어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단순함이다. 독일어로 ‘너’라고 말하려면 du, dich, Sie 등 7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지만, 영어는 you 하나만 쓰면 된다. 영어는 다른 유럽어처럼 명사의 성별을 구분하지도 않는다. sleep(잠, 자다), run(뜀, 뛰다), drink(음료, 마시다)처럼 한 단어를 명사와 동사로 쓴다. 그러나 이런 단순함은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들을 큰 혼란에 빠지게 한다. see는 ‘눈으로 본다’는 뜻으로 정의되지만 ‘I see what you mean(무슨 말인지 알겠어)’처럼 ‘안다’라는 뜻으로도 많이 쓰인다. keep은 ‘간직하다’라고 쓰이지만 ‘keep cool(냉정을 유지하다)’처럼 ‘계속하다’의 의미도 있다. have, give, what, it 같은 단어들은 사전에서 몇 페이지에 걸쳐 설명할 정도로 다양한 뜻이 있다.

영어는 왜 이처럼 간결하면서도 복잡한 특징을 갖게 된 것일까. 미국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타임스와 인디펜던트 기자로 일했고 영국 더럼대 총장을 지낸 빌 브라이슨은 영어의 유래와 성격을 《언어의 탄생》에서 탐구한다. 17세기까지만 해도 이류언어 취급을 받던 영어가 어떻게 세계 공용어가 됐는지 변화를 추적한다. 영어에 영향을 끼친 다른 언어들의 행방을 추적하며 지구상의 언어가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되고 분화돼 왔는지 밝힌다.영어의 발상지인 영국은 고대부터 외부 세력의 침입이 잦았다. 로마제국의 점령에 이어 앵글로색슨족의 이동, 바이킹, 노르만의 침략이 이어졌다. 영어는 라틴어의 어원을 많이 갖고 있으면서 스칸디나비아어와 노르만인이 쓰던 프랑스어를 흡수했다. leg(다리), skull(두개골), trust(믿다), lift(들다) 등은 스칸디나비아어에서 왔다.

12세기 프랑스 북부에서 넘어온 노르만인은 오랫동안 영국의 지배계급이었다. 따라서 justice(정의), damage(손해), govern(통치하다), prison(감옥), parliament(의회)와 같은 법률과 정부에 관한 영어 어휘는 거의 프랑스어에 기원을 두고 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집단이 아니라 개인으로서 영어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은 극작가 셰익스피어다. 그는 2000개가량의 단어를 고안하고 수많은 명언을 남겼다. breathing ones’s last(숨을 거두다), in my mind’s eye(기억으로), flesh and blood(혈육) 등과 같은 표현이 셰익스피어의 발명품이다. 철자법, 발음, 욕설과 같은 영어의 특징을 자세히 해부하고 적절한 유머와 예시를 곁들여 영어를 어렵게 느끼는 독자도 쉽게 읽을 만하다.

최종석 기자 ellisic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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