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실 최대 규모 문서 '이십공신회맹축' 보물서 국보로 승격

'고려사'·하동 쌍계사 목판 등 12건은 보물 지정
조선 숙종 때 공신들의 충성 맹세 기록을 담은 길이 24m의 왕실 최대 규모 문서 '이십공신회맹축-보사공신녹훈후'가 보물에서 국보로 승격됐다. 문화재청은 실물과 관련 기록이 완전하게 남아 있는 조선왕실 문서 '이십공신회맹축-보사공신녹훈후'를 국보로 지정했다고 18일 밝혔다.

이십공신회맹축-보사공신녹훈후(二十功臣會盟軸-保社功臣錄勳後, 국보 제335호)는 1680년(숙종 6년) 8월 30일 열린 회맹제(會盟祭)를 기념하기 위해 1694년(숙종 20년) 제작됐다.

회맹제는 임금이 공신들과 함께 천지신명에게 지내는 제사다. 이 의식에는 역대 20종의 공신(功臣)과 그 자손들이 참석해 임금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이 행사에는 참석대상 489명 중 412명이 참석했다.
이십공신회맹축-보사공신녹훈후는 회맹제 당시 종묘사직에 고하는 제문인 회맹문(會盟文), 참석대상 489명의 명단을 기록한 회맹록(會盟錄), 종묘에 올리는 축문(祝文)과 제문(祭文)으로 구성돼 있다. 말미에는 제작 사유 및 연대를 적었고 '시명지보'(施命之寶)라는 국새를 찍어 왕실 문서로서 완전한 형식을 갖췄다.

현재까지 문헌상으로 존재가 확인된 회맹축은 1646년(인조 24년)과 1728년(영조 4년)에 제작된 것을 포함해 총 3건이다.

영조 때 제작된 회맹축은 실물이 발견되지 않았고, 1646년에 제작된 '이십공신회맹축-영국공신녹훈후'(보물 제1512호)는 국새가 날인돼 있지 않다. 어람용이자 형식과 내용이 완전한 형태로 전래된 회맹축은 이십공신회맹축-보사공신녹훈후가 유일하다.

문화재청은 "이 회맹축은 17세기 후반 서인과 남인의 정쟁으로 혼란스러웠던 정국을 수습하고 왕권을 강화하고자 했던 당시 상황을 보여주는 사료로 역사·학술 가치가 높고, 압도적인 크기와 예술성을 갖춰 국보로서 가치가 충분하다"고 밝혔다.
아울러 문화재청은 '고려사' 6건과 하동 쌍계사 소장 목판 3건 등 총 12건을 보물로 지정했다.

고려사는 고려 시대의 정치·경제·사회·문화·인물 등을 정리한 역사서다.

보물로 지정된 고려사는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을해자본 2건, 목판본 2건), 연세대학교 도서관(목판본 1건), 동아대학교 석당박물관(목판본 1건, 부산시 유형문화재 제104호) 등 3개 소장처에 보관된 6건이다.
경남 하동 쌍계사 소장 목판으로는 '선원제전집도서 목판', '원돈성불론·간화결의론 합각 목판',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 목판'이 보물로 지정됐다.

또 '상주 남장사 영산회 괘불도 및 복장유물'은 높이 11m에 이르는 대형 불화 1폭과 각종 복장물을 넣은 복장낭(腹藏囊), 복장낭을 보관한 함을 포함한 복장유물로 구성돼 있다.

불화와 복장낭이 온전하게 남아 있는 사례는 매우 드물다.
'구미 대둔사 경장'은 1630년(인조 8년)에 조성된 경장(經欌, 불교 경전을 보관한 장)으로, 조선 시대 불교 목공예품 중 명문을 통해 제작 시기가 명확하게 파악된 희소한 사례다.
'지정조격 권1∼12, 23∼34'는 비록 완질은 아니지만 국내외를 통틀어 우리나라에서만 발견된 현존 유일의 원나라 법전으로, 경주 양동마을의 경주손씨(慶州孫氏) 문중에 600년 넘게 전해져 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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