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그래도 中 반도체 굴기는 계속된다

"잇단 실패에도 민관 투자 지속
SW 우수 인력 반도체로 이동
인재·경험·자본 '3박자' 갖춰가"

강현우 베이징 특파원
중국의 ‘반도체 굴기(起·우뚝 섬)’는 한국으로선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다. 이미 많은 부문에서 한국을 추월한 중국이 한국의 자존심까지 넘본다고 하니 말이다.

그런데 중국 반도체 굴기의 선봉장으로 불렸던 칭화유니그룹이 지난달 16일과 이달 10일 잇따라 디폴트(채무불이행)를 냈다. 그동안 시장에선 칭화유니의 자금 사정이 어렵다는 풍문이 끊이지 않았지만, 신용등급 AAA의 국유기업이 실제 디폴트에 빠질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칭화유니 사건을 두고 일각에선 “아직 중국은 멀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중국의 반도체산업 육성 전략에 큰 문제가 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반도체산업은 인재와 기술(경험), 자본이 어우러져야 하는데 돈 쏟아붓기에만 너무 치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으론 수조원에 달하는 ‘먹튀’ 사고가 터지고, 다른 한편으론 칭화유니 같은 국유기업이 자금난에 시달리는 걸 보면 자원 배분 효율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지난 8월 중국 기업 최초로 7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반도체를 만들겠다며 정부 자금 등 153억위안(약 2조5600억원)을 유치했던 우한훙신반도체(HSMC)가 문을 닫았다. 더커마반도체그룹은 장쑤성 난징과 화이안에 반도체 회사를 차리고 100억위안대 정부 투자를 받았으나 투자 유치 당시 제시했던 기술이나 해외 협력사가 없는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많은 전문가는 그러나 최근의 사건이나 시행착오는 시간이 지나면 결국 중국의 자산이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정부와 민간이 반도체 관련 투자를 더욱 늘리는 모습을 보면서 더욱 긴장감을 높여야 한다는 조언이다. 자본이 있는 곳에 인재는 몰리는 법이고, 시간이 지나면 경험도 쌓이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메모리반도체에서 세계 최강으로 성장해온 길도 마찬가지였다. 경영자들은 반도체에 미래가 있다는 점을 꿰뚫어보고 인재를 끌어들이고 자본을 투자했다. 삼성전자는 연봉 수십억원 샐러리맨 시대를 열었다. SK하이닉스는 신입 엔지니어에게 파격적인 장학금과 생활비까지 주면서 우수 인재들을 영입했다. 1990년대 서울대 ‘전전제(전자공학·전기공학·제어계측학)’가 의대만큼 합격선이 높았던 건 그만큼 미래가 보장돼서였다.

베이징에서 만난 한 정보기술(IT)기업 대표는 중국이 지금까지 반도체에서 성과를 내지 못한 이유도 최고급 인재가 모이지 않았던 탓이라고 설명했다. 중국의 우수한 젊은이들은 텐센트를 창업한 마화텅과 샤오미의 레이쥔 등 소프트웨어(SW) 개발자 출신 기업가를 보면서 이 분야로 몰려들었다. 중국의 SW 경쟁력이 미국에 이어 세계 2위(SW정책연구원 2019년 조사)에 올라선 배경이다.중국 중앙정부는 2014년 1390억위안 규모의 국가반도체산업투자펀드를 조성했다. 지난해 9월에는 2040억위안을 들여 2차 반도체펀드를 만들었다. 지방정부와 민간 투자를 합하면 2025년까지 매년 2000억위안(약 33조원) 이상이 반도체산업에 유입될 것으로 예상된다.

작년 말 기준 중국 전역에서 50여 개의 대형 반도체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전체 투자 규모는 1조7000억위안에 이른다. 대형 프로젝트들은 중국의 취약점이자 한국의 강점인 메모리반도체 공장에 집중돼 있다.

미국의 제재로 핵심 반도체를 구하기 어렵게 된 화웨이는 상하이에 400억위안을 들여 반도체 연구개발센터를 짓고 있다. 설립 3년 만인 지난해 중국 최초로 독자 설계한 D램을 양산하기 시작한 창신메모리는 지난 16일 156억위안의 정부 투자를 확보했다. 중국의 우수 인재들이 “반도체로도 큰돈을 벌 수 있겠다”고 생각할 만한 규모로 돈이 몰리고 있는 것이다.반도체산업으로의 인력 이동은 이미 일어나고 있다. 중국 정부에 올 들어 9월까지 ‘반도체’로 신규 등록한 기업 수는 1만3000여 개로 지난해(9000여 개) 수치를 넘어섰다. 대부분 SW 개발 능력을 기반으로 한 반도체 설계 전문기업(팹리스)들이다. 우수 인재가 핵심인 반도체 설계에선 민간이, 막대한 투자가 필요한 생산에선 정부가 주도하면서 중국 반도체 굴기의 기반이 갖춰지고 있다. 한국 정부가 ‘기업규제 3법’과 ‘중대재해기업처벌법’으로 기업의 기를 꺾을 때가 아니다.

2025년까지 반도체 자급률 70% 목표

중국은 세계 최대 반도체 수입국이다. 중국의 최대 수입품도 반도체다. 지난해 3059억달러(약 336조원)어치의 반도체를 수입했다. ‘반도체 굴기’를 추진하는 것은 첨단산업과 국가안보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큰 산업의 해외 의존도를 줄이려는 의도다.

중국 정부는 2014년 ‘반도체산업 발전 추진 요강’을 내놓고 반도체 굴기에 본격 착수했다. ‘빅 펀드’로 불리는 국가반도체산업투자펀드를 조성했으며 반도체 자급률을 2020년 40%, 2025년 70%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한국은 1982년 반도체 공업 육성 세부계획을 수립하고 체계적인 지원을 지속한 결과 10여 년 뒤인 1990년대에 메모리반도체에서 세계 선두권으로 올라섰다. 이에 견주면 중국이 제대로 성과를 내기까지는 몇 년 더 걸릴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시장조사업체 IC인사이츠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반도체 자급률은 15.6%로 2018년 16.5%에서 오히려 떨어졌다. 반도체 굴기 원년인 2014년 12.7%와 비교해 소폭 상승하는 데 그쳤다.이에 중국의 경제발전 계획을 총괄하는 국가발전개혁위원회는 지난달 반도체 투자에도 ‘선택과 집중’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h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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