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RCEP 견제냐, 지지층 표심이냐…바이든 'TPP 딜레마'

바이드노믹스 (4) 무역정책

아시아 동맹국 中 의존도 높아
RCEP로 경제 영향력 확대 우려

취임 후 TPP 복귀 서두르자니
바이든 보호주의 공약에 한표 준
러스트벨트 민심 잃을까 속내 복잡
중국 주도의 세계 최대 자유무역협정(FTA)인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이 출범하면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딜레마’가 커지게 됐다. RCEP의 대항마인 TPP 복귀를 서두르자니 지지층 이탈이 우려되고, TPP 복귀를 미루자니 중국의 아시아태평양 지역 영향력 확대를 눈 뜨고 지켜봐야 하기 때문이다. TPP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주도적으로 추진했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017년 취임 직후 탈퇴하면서 현재 미국을 뺀 일본, 호주, 캐나다, 멕시코 등 11개국만 참여하는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뉴욕타임스(NYT)는 15일(현지시간) “TPP는 여전히 논쟁적인 사안이고 바이든은 취임 후 TPP 복귀 여부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전했다. 현재로선 내년 1월 20일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해도 단기간에 TPP에 복귀하긴 어렵다. 우선 바이든은 대선 때 국내 투자가 충분히 이뤄지기 전에는 새로운 무역협정을 체결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게다가 TPP 복귀는 바이든과 민주당 모두에 정치적으로 힘든 선택이다. 올해 대선에서 승리의 ‘1등 공신’ 역할을 한 펜실베이니아, 미시간, 위스콘신 등 러스트벨트(쇠락한 동부 공업지역) 표심이 이탈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민주당은 2016년 대선 때 TPP,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등 자유무역협정을 옹호하다가 러스트벨트에서 패했다. 세계화 과정에서 경쟁력을 잃은 러스트벨트의 제조업 노동자 상당수는 당시 자유무역에 반대하고 ‘미국 우선주의’를 내건 트럼프를 찍었다.

이런 경험 때문에 바이든과 민주당은 올해 대선에선 자유무역과 거리를 두는 대신 미국 제품 우선 구매, 미국 기술 투자 확대 등을 핵심으로 하는 ‘바이 아메리칸’ 공약을 내걸었다. 바이든이 올해 러스트벨트를 탈환한 데는 이런 보호주의 공약이 적잖은 역할을 했다.

여기에 코로나19 대응 등 국내 문제가 산적해 바이든 정부가 출범해도 초기엔 통상정책에 신경 쓸 여력이 적다.

하지만 중국이 RCEP을 앞세워 아태 지역에서 영향력을 굳힐 수 있다는 게 문제다. 이미 한국, 일본, 호주 등 미국의 아시아 핵심 동맹국들조차 무역 규모에선 미국보다 중국에 더 많이 의존하고 있다. RCEP은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중국의 입김을 더 강화시킬 수 있다.

리커창 중국 총리는 RCEP을 “다자주의와 자유무역의 승리”라고 평가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RCEP 체결의 기세를 몰아 17일 브릭스(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 정상회의, 20일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21~22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등 세 차례의 국제회의에 참석해 미국 일방주의를 겨냥해 다자주의와 자유무역 등을 강조할 계획이다. 베이징 소식통은 “바이든 행정부의 대중국 압박도 거셀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중국은 미국의 포위 전략을 뚫기 위해 RCEP뿐만 아니라 브릭스 정상회의 등 다양한 국제기구를 우군으로 최대한 활용하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NYT는 “중국 주도의 RCEP뿐 아니라 유럽연합(EU)도 공격적으로 무역 협상을 추진하고 있다”며 “다른 나라들이 무역 합의에 서명할수록 미국 수출업계는 차차 기반을 잃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워싱턴·베이징=주용석/강현우 특파원 hoho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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