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촘촘규제'에 막힌 자율차 시험주행

국내에서 기술개발 끝내놓고도
운행허가 막혀 미국 등 해외 전전

이선아 산업부 기자 suna@hankyung.com
현대모비스는 러시아 정보기술(IT) 기업 얀덱스와 개발한 레벨4 자율주행차의 시험운행을 미국 미시간주의 중소도시 앤아버에서 하고 있다. 레벨4는 사람이 운전대에 손을 댈 필요 없는 ‘완전 자율주행 단계’다. 두 회사는 앞서 러시아와 이스라엘에서 테스트를 했다.

국내는 어떨까. 현대모비스가 한국에서 진행한 레벨4 자율주행 테스트는 연구소 내에서 진행한 게 전부다. 정해진 코스를 돌거나 시뮬레이터를 통해 가상주행을 하는 수준이다. 현대자동차가 미국 자율주행 기업 앱티브와 합작해 만든 모셔널도 미국, 싱가포르 등 해외를 돌며 테스트하고 있다.기업들이 해외로 눈을 돌리는 건 까다로운 규제 때문이다. 자율주행시스템의 경쟁력은 실제 도로 환경에서 쌓은 엄청난 양의 데이터에서 나온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쉽지 않다. 규제 특례가 적용되는 시범운행지구라도 연구소를 벗어나 일반 도로에서 달리려면 초기 설계부터 일일이 국토교통부 산하 자동차안전연구원(KATRI)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2016년부터 임시운행 허가를 받은 차량이 100대가 전부일 정도로 기준이 까다롭다. 업계 관계자는 “운행 테스트를 통해 개선점을 파악하고 보완해야 하는데, 운행 허가를 받기조차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운전석 없는 완전 자율주행차’의 테스트는 더 어렵다. 현행 도로교통법과 자동차관리법은 운전 주체를 ‘운전자(사람)’로 규정하고 있다. 운전자가 탑승하지 않으면 법에 저촉되는 셈이다. 국토부의 별도 승인을 받아야 가능하지만 명문화된 요건이 없다 보니 신청이 반려되는 경우가 많다. 반면 현대모비스와 얀덱스가 시험대로 삼은 미시간주는 레벨4~5 자율주행차 테스트를 폭넓게 허용하고 있다. 안전한 주행환경을 제공하기 위한 인프라 투자에도 적극적이다.

국토부가 기업들의 애로사항을 모르는 건 아니다. 국토부 관계자는 “레벨4 자율주행차의 시범 운행 요건을 명문화하고, 무인 자율주행 셔틀·무인 택배차 등 유료 운송·화물 서비스까지 가능하도록 구상 중”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미 해외로 나간 기업들을 국내로 불러들일 만큼 실질적 변화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업계 관계자는 “아직 자율주행 관련 국내 인프라와 전문 인력이 해외보다 부족하다”며 “일부 조건만 허가하고 나머지는 모두 금지하는 ‘포지티브 규제’에서 벗어나 포괄적 허용으로 나아가야 한국이 자율주행 기업에 매력적인 선택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언택트(비대면) 시대의 도래로 자율주행 기술력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자율주행차 테스트 베드 경쟁에서 한국은 밀려난 지 오래다. 미래차의 핵심 기술을 가진 국내 기업조차 한국을 외면하는 상황이 올까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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