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읽기] 50년 만에 '新 세계불황'…갈피 못 잡는 韓 정부

보호무역주의 확산에 교역 '뚝'
공급 부족發 글로벌 불황 우려
유가 급등 가능성도 배제 못해
韓 '슈퍼 예산' 물가 불안만 초래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영국 경제전문지인 이코노미스트가 <2020 세계경제 대전망>을 내놨다. 크게 두 가지가 눈에 들어온다. 하나는 1970년대 이후 50년 만에 세계 경제가 공급 부족발(發) 불황에 빠질 것이라는 전망이고 다른 하나는 내년 11월로 예정된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연임에 실패할 것이라는 인공지능(AI)의 예상이다.

공급 부족발 세계 불황의 주요인으로는 미·중 간 무역마찰이 2년 이상 지속되면서 세계 가치사슬(global value chain)이 약해지고 있는 점을 들고 있다. 세계 가치사슬이란 ‘기업 간 무역’과 ‘기업 내 무역’으로 대변되는 국제 분업 체계를 말한다. 금융위기 이후 세계 교역 증가율과 세계 가치사슬 간 상관계수는 ‘0.85’에 달할 만큼 높게 나온다.
세계 가치사슬이 약해지면 각국은 자유무역의 이점을 누리지 못하고 자급자족적인(autarky)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 데이비드 리카르도 등 자유무역론자에 따르면 각국이 비교우위에 있는 상품을 특화해 생산하고 서로 교역하면 세계 경제 발전에 크게 도움이 될 수 있다. 자급자족 경제에서는 비교열위 상품도 스스로 생산해야 한다.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보호주의가 기승을 부리면서 세계 교역 탄성치(세계 교역 증가율÷세계 경제 성장률)는 갈수록 떨어지는 추세다. 3년 전 ‘2배’에 육박했던 세계 교역 탄성치가 올해 하반기 들어서는 ‘1배’ 내외로 떨어졌다. 세계 교역 탄성치가 1배 밑으로 떨어지면 세계 경기는 침체 국면에 들어간다.공급 부족발 세계 경제 불황 가능성을 높여주는 것은 석유수출국기구(OPEC) 플러스 정상회의에서 내년 3월 말까지 하루 원유 생산량 감소 규모를 170만 배럴로 대폭 늘린 점이다. 당초 예상은 1년 전 결정한 하루 감산 규모 120만 배럴을 그대로 유지하는 대신 내년 3월 말로 예정됐던 감산기간을 같은 해 6월 말로 연장하는 방안이었다.

두 차례 오일 쇼크를 겪은 1970년대와 달리 OPEC 회원국 간 분열,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인 중국의 경기 부진 등으로 유가가 급등할 가능성은 낮다. 국제에너지기구(IEA) 등이 내놓은 내년 유가 전망을 보면 서부텍사스원유(WTI) 기준으로 올해와 비슷한 배럴당 50~60달러대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미·중 간 무역마찰에 이어 미국과 OPEC 플러스 회원국 간 원유 전쟁이 벌어진다면 상황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재정 수입과 아람코 주가를 끌어올리기 위해 사우디아라비아는 원유 감산을 쉽게 포기할 여건이 아니다. 미국과의 마찰에 대비해 러시아도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다.OPEC 플러스 회원국의 원유 감산으로 유가가 급등한다면 취임 이후 3년 동안 뚜렷한 성과가 없는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 자동차가 필수품인 미국 국민의 일상생활에서 가솔린 가격이 올라가면 대통령은 선거에서 불리해진다. 트럼프 대통령이 바라는 유가 수준이 2016년 2월 기록한 배럴당 26달러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작년 9월부터 금리 문제로 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과 지루한 싸움을 하고 있다. 유가가 상승하면 이 싸움에서도 불리해진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임에 유일한 버팀목인 경기와 증시 안정을 위해 금리를 대폭 내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최근에는 유럽과 일본처럼 마이너스 수준으로 떨어뜨려야 한다고 연일 외치고 있다.

미·중 간 무역마찰에 이어 미국과 OPEC 플러스 회원국 간 원유 전쟁이 벌어진다면 세계 가치사슬은 더 빨리 무너질 가능성이 높다. 두 차례 오일 쇼크를 겪은 50년 전 당시보다 더 심한 세계 경제 불황이 닥칠 것으로 보는 시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는 지금의 상황이 2차 세계대전 직전과 비슷하다고 보고 있다.중요한 것은 ‘50년 만에 닥칠 공급 부족발 세계 경제 불황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최선책은 지금이라도 미·중이 무역 마찰을 타결하고,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가 전통적인 우호 관계를 복원하는 것이다. 하지만 전자는 ‘경제 패권’, 후자는 ‘원유 패권’ 다툼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쉽지 않아 보인다.

양대 패권 싸움에 차선책은 ‘공급중시 경제학’이다. 세계 가치사슬 붕괴로 공급이 부족해진다면 감세, 규제 완화 등을 통해 기업과 국민의 경제 의욕을 고취해 제자리로 돌려놓으면 된다. 한국 정부처럼 슈퍼 예산 등을 통한 총수요 진작책은 성장률 제고 효과는 작은 대신 물가만 불안하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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