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 前 서핑을 즐긴다니…너무 여유 부리는 것 아냐?

여행의 향기

남아프리카공화국 숨은 보석, 더반
아름다운 정원을 바라보며 식사할 수 있는 마카랑가.
아프리카 최서남단 남아프리카공화국, 인도양 바다와 아프리카 땅이 만나는 곳에 더반이 있다. 줄루족과 백인 및 인도계 주민 등 다민족이 어우러져 사는 남아공 제3의 도시다. 그 모든 문화가 익은 카레처럼 도시 곳곳에 깃들어 있다. 더반을 여행하는 이들은 긴 해변과 푸른 바다와 맛있는 음식과 명랑한 날씨에 반하고, 날씨보다 더 쾌활한 더반 사람들에게 반하곤 한다. 더반의 무지개 같은 매력은 끝이 없다고 감탄하면서.

365일 중 320일이 화창한 항구도시, 더반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남아공행 비행기 안에서 되뇐 아프리카 속담이다. 24시간 이상 이동하다 보니 이야기 나눌 일행이 있다는 게 어찌나 고맙던지. 경유지인 홍콩을 떠난 지 13시간 만에 남아공 요하네스버그 공항에 도착, 더반 킹 샤카 공항행 국내선으로 갈아탈 땐 포르투갈 탐험가 안토니오 피가페타가 남긴 말 ‘지구는 둥글다. 그러나 육지에 닿는다’를 떠올리며 아픈 허리를 두들겼다. 오래전 아프리카 대륙의 남쪽 끝, 남아공에 첫발을 디딘 유럽인은 포르투갈 탐험가 바르톨로메우 디아스였다. 더반을 발견한 사람도 포르투갈 탐험가 바스쿠 다가마다. 1497년 12월 25일 더반에 닻을 내린 바스쿠 다가마가 포르투갈어로 크리스마스란 뜻의 나탈(Natal)이라 이름을 붙인 덕에 더반은 한동안 포트나탈(Port Natal)로 불렸다. 1835년 케이프 식민지 총독이었던 B 더반 경의 이름을 따서 더반이라 개칭하기 전까지는.

장장 26시간 만에 도착한 더반 킹 샤카 공항을 나서자 환한 햇살이 쏟아졌다. 1년 365일 중 320일이 날씨가 좋다는 아열대 도시답게 하늘은 맑고 공기는 청량했다. 비행기에서 구겨졌던 몸과 마음이 구원받는 기분이랄까. 여기에 샤이니 브라이트라는 가이드가 이름에 어울리는 환한 미소로 일행을 반겼다. “더반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저는 영국인이지만 더반이 좋아서 여기 살고 있어요. 날씨가 좋고요, 날씨만큼 사람들이 좋아요. 늘 웃는 얼굴로 인사를 건네죠. 게다가 요하네스버그, 케이프타운을 잇는 남아공 제3의 도시 더반은 인도양에 면한 항구도시랍니다. 지금부터 이 도시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여줄게요.” 가이드 샤이니를 따라간 더반 항구는 아프리카 최대 항구답게 웅장했다. 인도양을 마주하고 끝도 없이 이어지는 해변, 골든 마일(Golden Mile)은 때마침 황금빛으로 반짝였다. 골들 마일을 따라 늘어선 호텔과 리조트의 실루엣에서 휴양지 기운이 물씬 묻어났다. 어디를 가나 사람들은 느린 걸음으로 걷고 있었고, 눈이 마주치면 손을 흔들기도 했다.
인도양과 아프리카 대륙이 만나는 항구도시 더반의 풍경.
이튿날 더반의 달콤한 햇살에 잠이 깼다. 호텔 창문을 열자 해안이 아침 햇살에 금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야자수 너머 넘실대는 인도양 푸른 바다에는 이른 아침부터 서퍼들이 파도를 타는 모습은 예상치 못한 장면이었다. 후에 알게 된 사실인데, 더반 사람들은 출근 전 아침 서핑을 즐긴다고. 인다바2019(남아공에서 열리는 아프리카 최대 관광박람회) 일정이 있어 당장 해변으로 달려 나갈 순 없었지만, 호텔 방에서 해변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여유가 차올랐다. 아무 일이 없다면, 자전거를 빌려 해변의 끝까지 신나게 달려간 다음 노천카페에 앉아 커피를 홀짝이고 싶은 날씨였다. 아무튼 더반의 여유는 6㎞ 길이의 긴 해변 골든 마일을 따라 흐르고 있었다.줄루족과 인도계, 백인이 더불어 사는 다문화의 땅

더반은 본래 남아공 최강의 부족 줄루(Zulu)족의 땅이었다. 줄루족은 케냐의 마사이족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아프리카에서 강한 부족으로 손꼽힌다. 포르투갈 탐험가가 남아공을 발견한 후, 보어인(네덜란드인)이 이주하며 원주민들의 영토를 빼앗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들도 점령하지 못한 지역이 더반이 속한 콰줄루-나탈주였다. 킹 샤카라는 걸출한 줄루족 지도자와 용맹하기로 이름난 줄루족 용사들 덕에 전쟁에서 승리했다. 지금도 더반에는 줄루족들이 많이 살고 있다.
격렬한 춤사위가 흥겨운 줄루족 전통 공연.
더반에서 줄루족 다음으로 많은 주민은 인도계다. 백 년 전 영국이 더반을 넘보던 시절, 영국의 식민지인 인도에서 사탕수수 밭 노동자로 강제로 끌려온 인도 사람의 자손들이다. 더반 사람들은 커리를 즐겨 먹고, 인도 거리가 있을 정도로 인도 문화가 더반 깊숙이 깃들어 있다. 1989년 백인들에 의해 시행된 인종차별정책 아파르헤이트(Apartheid)가 폐지된 이후, 더반에는 줄루족, 인도인, 영국계와 네덜란드계 백인이 함께 산다.

아이하트 마켓에서 직접 만든 남아공식 육포 빌통을 파는 노부부.
줄루족이 고군분투하며 지켜온 언어와 고유의 문화를 엿보려면 천 개의 언덕이라 불리는 사우전드 힐(Thousand Hill)의 페줄루 공원으로 가면 된다. 페줄루 공원엔 줄루족이 실제로 살고 있어 그들의 전통 가옥을 보고, 고유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 하이라이트는 하루 네 번 선보이는 줄루족 전통 공연이다.

구슬을 꿴 장신구로 한껏 치장을 한 줄루족 남녀가 격렬한 춤을 추며 관객을 압도하는데, 그 내용은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와 결혼을 하기 위해 어떻게 구애하는 가다. 중간중간 영어로 해설을 해주니 줄루어를 몰라도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공연을 신나게 보고 나서는 길, 스쿨버스를 타고 소풍 온 어린이들과 마주쳤다. 아이들은 창 너머로 고개를 내밀고 환하게 웃으며 큰 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라고.

사우전드 힐에서 좋은 하루를 보내는 법은 간단하다. 전망 좋은 식당에서 느긋하게 점심 식사를 즐기는 것. 어디로 갈까 고민하다가 정원이 아름답기로 소문난 로지, 마카랑가로 향했다. 입구에서 레스토랑까지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내려가는 동안 열대 식물들이 햇살을 받아 반짝였다. 유난히 맛있다는 남아공산 아보카도로 만든 샌드위치를 가볍게 맛본 후 둘러본 정원에는 어찌나 크고 멋진 식물들이 많은지 울창한 밀림 같았다. 식물들 사이사이 짐바브웨에서 공수해온 조각상도 이국적인 볼거리였다.
괜찮아, 여긴 더반이잖아…365일 중 320일이 맑은 도시!
‘사우전드 힐’의 페줄루 공원에선 하루 4번 아프리카 줄루족 전통공연더바너처럼 주말을 보내는 법

“더반 사람들은 일요일이면 아이하트 마켓에서 시간을 보내죠. 지역 주민들이 만든 식자재나 수공예품을 파는 벼룩시장인데, 살거리 먹거리가 많거든요.” 가이드의 말에 주말 아침 아이하트 마켓(I Heart Market)을 찾았다. 아이하트 마켓은 2010년 남아공월드컵 때 한국팀 경기가 열렸던 모세스마디바 스타디움 앞에서 토요일마다 열린다. 마켓에 들어서자 갓 딴 마카디미아, 남아공식 육포 빌통부터 수제 쿠키와 올리브 조림 등 먹거리가 식욕을 자극했다.
격렬한 춤사위가 흥겨운 줄루족 전통 공연.
인도식 커리나 남아공식 비비큐, 브라이와 영국식 스카치 에그 등 마켓에서 파는 음식에서도 다양한 문화가 묻어났다. 특히 스카치 에그는 삶은 달걀을 소시지로 감싼 뒤 빵가루를 묻혀 튀기는 간식으로 남부 인도에 영향을 받은 영국식 메뉴로 그 맛이 일품이었다. 요것저것 사서 요기를 하는데, 어디선가 까르르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나는 곳을 찾아가니 피부색이 다른 아이들이 비눗방울을 쫓아 뛰놀고 있었다. 그 평온한 풍경에 혹시나 마켓이 위험하진 않을까 긴장했던 마음이 스르르 풀렸다.
인도와 영국식 문화가 녹아 있는 스카치에그.
오후는 더반에서 뜨는 동네 움랑가(Umhlanga)에서 보내기로 했다. 움랑가는 고급 콘도와 호텔이 즐비한 해변가로 터줏대감은 1954년에 만들어진 움랑가 등대다. 몸통은 흰색, 꼭대기는 빨간색으로 칠해 멀리서도 눈에 띄는 움랑가 등대는 등대와 빨간 줄무늬 파라솔을 펼친 오이스터 박스 호텔과 어우러진 풍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등대 뒤 오이스터 박스 호텔은 콜로니얼 양식으로 지은 건물과 고풍스러운 인테리어 덕에 인기가 많다. 이건희 삼성 회장도 다녀갔다고. 더반 사람들도 주말이나 특별한 날 이 호텔 레스토랑에서 느긋하게 식사를 즐기곤 한다. 움랑가 등대와 점심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면 1층 레스토랑 테라스에 앉는 게 좋다. 단 호시탐탐 테이블 위의 음식을 노리는 원숭이의 습격을 받을 수도 있다.

오이스터 박스 호텔에서 우아한 브런치를 만끽한 후 현지인들처럼 여유롭게 해변의 산책을 즐기기로 했다. 어느새 하늘이 흐려졌는데, 바닷가에서 낚시와 서핑을 즐기는 이들은 날씨 따위 아랑곳없이 표정이 밝았다. 움랑가 등대를 지나 웨일 본 피어 부두까지 늘쩡늘쩡 걸었다. 웨일 본 피어는 이름처럼 고래뼈를 형상화한 조형물이 상징인 부두다. 조형물 사이를 지나노라니, 고래 배속을 걷는 기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 길의 끝에는 엄마와 아이들이 파도치는 바다를 바라보며 깔깔 웃고 있었다. 그 뒷모습을 보며 엄마가 아이들에게 뭐라고 말했을까 상상해 보았다. 혹시 이렇게 말하진 않았을까. “인생은 날씨 같은 거란다. 오늘은 흐려도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거야. 여긴 더반이잖니. 365일 중 320일이 맑은 도시!”

더반 =우지경 여행작가 traveletter@naver.com여행 정보

인천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까지 직항은 없다. 남아공 항공을 탈 경우 홍콩을 경유해 요하네스 공항까지 간 후 다시 국내선으로 갈아타야 한다. 30일간 비자 없이 체류할 수 있으며, 한국보다 7시간 느리다. 한국의 여름은 남아공의 겨울로, 여행하기 좋은 계절은 12~1월이다. 온화한 아열대 기후로 여름에는 평균 20도, 겨울에도 평균 22도를 유지하는 덕이다. 통화는 랜드(ZAR)를 쓰며 10랜드는 약 810원이다. 전압은 240V로 어댑터가 필요하다. 다른 아프리카 국가와 달리 풍토병 위험이 없어서 황열병, 말라리아 등의 예방주사를 맞거나 약을 먹지 않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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