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준영의 논점과 관점] 괴담에 휘둘리는 대한민국

양준영 논설위원
네이버의 제2데이터센터(IDC) 건립 무산 사태는 우리 사회에 많은 시사점을 남겼다. 네이버는 당초 경기 용인시 공세동에 5400억원을 투자해 데이터센터를 지을 계획이었다. 하지만 지역 주민들의 반대로 첫 삽도 못 뜨고 포기했다. 그러자 경기 수원·파주, 인천 등 다른 지방자치단체 10여 곳이 ‘러브콜’을 보냈다. 용인시도 다른 부지를 제공하겠다며 유치전에 뛰어들었다. ‘님비(NIMBY: 우리 동네에는 안 된다)’가 ‘핌피(PIMFY: 제발 우리 동네로 와 달라)’로 바뀐 것이다.

데이터센터·사드 반대 '닮은꼴'건강과 환경을 앞세운 용인 주민들의 반대를 지역이기주의로만 치부하기는 어렵다. 다만 반대 이유가 ‘전자파 괴담(怪談)’ 때문이란 건 안타깝다. 주민들은 전기시설에서 발생하는 전자파와 냉각탑에서 나오는 오염물질이 건강을 위협할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기우일 뿐이다. 네이버 측이 각종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며 “위험이 거의 없다”고 설득했지만 소용없었다. 지역 국회의원과 시의원들까지 반대에 가세했고, 용인시는 눈치만 보며 수수방관했다. 괴담에 맞서 주민을 설득해야 할 지역 정치인과 지자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확증편향’을 강화하는 데 일조했다.

2017년 경북 성주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때도 괴담이 판쳤다. 반대론자들은 사드 레이더에서 내뿜는 전자파가 암을 유발하고 농작물을 오염시킨다고 주장했다. 전자파가 인체 노출 허용치에 크게 못 미치는 것으로 나왔지만 ‘전자파 참외’ 등 근거 없는 괴담으로 국론이 분열되고 사회적 갈등이 확대됐다. 10여 년 전 광우병 소동도 국민 기만행위였다. 과학적으로 입증된 사실보다 ‘뇌 송송 구멍 탁’ 같은 자극적인 괴담이 확산되면서 사회는 극심한 혼란을 겪었다.

문재인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에는 과학적 근거 없이 무분별하게 유포된 방사능 공포와 괴담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2011년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원인은 지진해일(쓰나미)이었다. 사망자도 대부분 지진과 해일의 피해자였다. 그런데도 암과 백혈병 사망자가 늘었다거나 일본 전역이 세슘으로 오염됐다는 괴담이 여전히 활개치고 있다. 탈핵단체들은 최근 한빛 1호기 수동정지 사건을 체르노빌 사고에 빗대며 원전 공포를 부추기기도 했다.한국 사회에서는 주요한 이슈가 있을 때마다 괴담이 유행했다. 특히 정치적으로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안에서 괴담은 위력을 발휘했다. 불통과 확증편향은 괴담이 자라날 토양을 제공했고, 소셜미디어는 이런 현상을 더욱 강화했다. 무조건 반대하고 보자는 풍조가 확산됐고, 이는 불필요한 사회·경제적 비용을 발생시켰다.

정부가 갈등 유발자 돼선 곤란

진실이 뒷전으로 밀려나고 선동과 괴담이 판치는 사회를 건전한 사회라고 할 수 없다. 정치·사회적 갈등을 조정할 책임을 맡은 정부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국민통합을 이뤄내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지난 2년간 적폐청산에 열중하면서 사회적 갈등의 골은 깊어졌다. 편 가르기와 진영논리로 일관하다 보니 여야 대립은 풀리지 않고 있다. 사회적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으로 분배구조는 악화되고, 곳곳에서 갈등이 표출되고 있다.정부는 사회적 논쟁과 갈등을 어떻게 슬기롭게 풀 것인지에 관심을 쏟아야 한다. 이를 위해 통합과 협치에 더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갈등의 조정자가 돼야 할 정부가 갈등 유발자가 돼서는 안 된다. 갈등과 괴담이 판치는 한 대한민국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tetriu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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