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화관法 무서워…통째 문닫은 中企단지

21일 처벌유예 종료 '초비상'
12개 도금업체가 입주해 있던 인천 고려도금단지는 최근 통째로 문을 닫았다. 강화된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이 시행되면 도저히 사업을 계속할 수 없어 입주 기업들이 스스로 단지 폐쇄를 결정했다. 12개 중 7개는 다른 곳으로 옮겨갔지만 5개는 사업을 접었다.
인천의 한 주물공장에서 쇳물을 받아내고 있다. 주물업체는 쇳물을 모래틀에 넣어 자동차·선박부품 등을 제조한다. 모래틀을 만들 때 사용하는 화학물질이 화관법 대상이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화관법 위반사항 자진신고 기업의 처벌유예가 오는 21일 끝나면서 중소기업계에 초비상이 걸렸다. 공장 현대화가 미비하고 영세한 수많은 주물 도금 열처리 관련 중소기업이 촘촘한 화관법망을 비켜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환경부는 14일 “자진신고를 이행하지 않은 사업장이나 미신고 사업장에 대해선 더 이상 유예기간을 두지 않는다”며 “다음달부터 지도·점검과 현장단속을 통해 화학물질 불법영업을 근절하겠다”고 밝혔다. 2017년 11월부터 지난해 5월까지 6개월간 화관법 자진신고 기간에 접수한 법 위반업체와 건수는 각각 1만26개, 18만6389건에 달했다. 환경부는 이날 자진신고 업체의 96%인 9651개사(18만6014건)가 후속 조치 이행을 마쳤거나 기간 내 이행할 것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미신고 기업이 얼마나 되는지는 파악조차 못한 실정이다. 수천 개로 추산되는 미신고 영세업체가 한계 상황으로 내몰릴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복잡한 심사절차와 추가 비용 부담 등으로 극심한 혼란에 빠졌다. 화관법상 유해화학물질 취급업체가 영업허가를 받으려면 장외영향평가, 취급시설 검사, 전문인력 채용 등의 절차를 밟아야 한다.
수도권의 한 도금업체 관계자는 “단속이 본격화되면 준비가 안 된 도금 열처리 등 뿌리산업 기업들의 휴·폐업 도미노가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까다로운 '화관법 폭탄'에…손도 못댄 영세中企 수천곳 '줄폐업' 위기

중소기업들이 오는 21일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 처벌 유예기간 만료를 앞두고 전전긍긍하고 있다. ‘영업허가’ 절차가 까다롭고 추가 비용부담도 만만찮기 때문이다. 유해화학물질을 사용하는 중소업체가 영업허가를 받기 위해서는 세 가지 절차를 밟아야 한다. ‘장외영향 평가서→취급시설 검사→전문인력 채용’이다. 임차공장이나 낙후된 공장에서 사업을 하는 중소기업의 경우 단속을 본격화하면 연쇄 휴·폐업 사태를 부를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주로 도금 주물 열처리 등 뿌리기업들이 대상이다.

‘장외영향 평가서’ 컨설팅만 2000만원

우선 장외영향 평가서를 작성해 관련 기관의 심사를 거쳐야 한다. 구비서류가 많고 규정이 까다로워 업체 스스로 작성하기 힘들다. 충남의 주물업체 삼천리금속은 컨설팅업체에 의뢰해 책 한 권 분량으로 서류를 만들어 관련 기관에 제출했다. 작년 말 2000만원이 들었다. 평가 기관은 전국에 한 곳이다. 회사 관계자는 “관련 기관에 최근 문의해 보니 대상 업체가 많고 업무가 몰려 아직도 서류를 심사하지 못하고 있다는 응답을 들었다”고 말했다.

취급시설 검사도 마찬가지다. 영남권의 환경업체 L사장은 이 절차가 얼마나 까다로운지 혀를 내둘렀다.그는 “도금업체들도 화학물질을 많이 취급한다”며 “화학물질 취급시설을 어디에 설치해야 하는지 명확하지 않고 검사기준도 무척 까다롭다”고 말했다. 예컨대 취급시설 검사 때 비파괴검사를 받도록 하고 있는데 고압을 쓰지 않은 업체에서 왜 비파괴검사를 받아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이 비용이 수백만원에 이른다. 내진설계검사 성적서도 필요하다. 이를 받는 데도 수백만원이 든다. 검사내용을 종합하면 책으로 한 권이 넘는다.

기술인력 채용 ‘하늘의 별 따기’

대개의 환경 관련 업무는 ‘대행업체’를 이용할 수 있다. 화관법에서는 유자격자를 1명 이상 의무적으로 채용(종업원 30인 이상 기업)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유자격자는 △화공안전 분야 등의 기술사 △산업안전 분야 등의 석사 학위자로 실무경력 3년 이상 △화공 분야 등의 기사 중 실무경력 5년 이상 △산업 안전 분야 등의 기능사 중 경력 7년 이상인 자 등으로 돼 있다. 중소기업은 인력난으로 단순 생산직 한 명을 뽑기도 어렵다. 화관법 관련 고급인력을 채용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게 중소기업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처벌 피하려 검증 안 된 재료 쓰기도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곳곳에서 부작용이 생기고 있다. 주물업체는 선철이나 고철을 고온으로 녹인 쇳물로 자동차부품 또는 선박부품 등을 제조한다. 주로 모래틀을 이용한다. 이때 모래가 서로 잘 붙도록 풀 역할을 하는 물질(점결제)을 섞는다. 점결제로는 주로 레진을 쓴다. 레진에는 그동안 ‘푸르푸릴알코올(furfuryl alcohol)’ 함량이 85%인 것을 사용해왔다. 점결효과가 좋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비율이 25% 이상이면 화관법상 유독물질에 해당한다. 최근 ‘25% 미만의 푸르푸릴알코올’을 쓰는 기업이 늘고 있다. 영업허가를 받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인천 주물업체 C사장은 “대체 재료가 아직 검증이 안 돼 주물제품의 불량률이 높아지거나 제조공정에서 모래틀이 무너져 안전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화관법의 처벌을 벗어나기 위해 수도권의 한 도금단지는 문을 닫았다. 이 도금단지를 운영해온 K사장은 “도금업종은 화학물질을 많이 사용할 수밖에 없다”며 “강화된 화관법이 적용되면 도저히 사업을 할 수 없어 입주업체와 회의를 거쳐 문을 닫았다”고 말했다. 경기지역의 한 도금업체 관계자는 “일부 업체는 단속이 나와 적발되면 아예 사업을 접겠다고 얘기할 정도여서 줄줄이 휴·폐업하는 현상이 벌어질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화관법

화학물질관리법의 줄임말. 화학물질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유해화학물질의 취급 기준을 강화하는 법률이다. 기존 ‘유해화학물질관리법’을 전면 개정한 것으로 2015년 1월 1일부터 시행하고 있다. 유해물질 취급 공장이 충족해야 할 안전 기준을 79개에서 413개로 늘렸다.

김낙훈 중소기업전문기자/구은서 기자 nhk@hankyung.com


[반론보도] 환경부, 화학물질관리법 시행 관련

본지는 지난 5월 15일자 화학물질관리법(이하 화관법) 관련 기사에서 △화관법 자진신고 처벌 유예기간 만료를 앞두고 이행이 어려워 수천 개의 중소기업이 연쇄 휴·폐업 사태 등이 우려되며, △삼천리 금속(충남 천안)은 화관법 위반사항 신고기한을 넘겨 전과자가 되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에 대해 환경부는 △본격적인 화관법 적용에 앞서 최대 5년의 유예기간과 자진신고 기간을 부여하였으며, 중소기업의 화관법 이행이 확대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영세 중소기업이 화관법 때문에 줄폐업한다는 객관적 근거가 없다고 알려왔습니다.또한 환경부는 △보도의 삼천리 금속은 2015년 이전부터 유해화학물질관리법(현 화학물질관리법) 적용대상으로 무허가 영업을 지속해오다, 2018년 11월 적발된 것으로 확인되었으며, △유해화학물질의 안전관리를 도모하면서 중소기업의 원활한 이행을 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제도적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밝혀왔습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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