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중견 업체 외면한 파운드리 육성책

고재연 산업부 기자 yeon@hankyung.com
중견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업체들은 요즘 중대 기로에 서 있다. 수요가 없어서가 아니라 넘치는 게 문제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빛, 소리, 이미지 등 아날로그 신호를 디지털로 변환해주는 아날로그 반도체의 수요가 급격하게 늘어나서다.

생산 물량을 늘려달라는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업체)들의 요청이 쏟아지지만 이미 설비는 ‘완전가동’ 상태다. ‘적기 투자’로 시장을 키워야 하지만 DB하이텍은 투자 결정을 주저하고 있다. 한 번 증설하면 파운드리 사업 특성상 조 단위 투자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문제는 정부가 지난달 30일 발표한 시스템 반도체 육성 방안에서 중견 파운드리는 소외됐다는 점이다. 정부 지원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생산성 향상 설비투자에 대해 세액공제의 일몰기한을 연장하는 방안이 들어 있다. 하지만 실효성이 낮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DB하이텍이 받은 관련 세액공제액은 4억원에 불과했다. 지난해 약 1000억원을 투자했지만 DB하이텍 공장 두 곳 중 경기 부천공장은 ‘수도권과밀억제권역’ 내에 있어 세액공제 대상에서 제외됐다.

신성장동력·원천기술에 해당하는 연구개발(R&D) 비용에 한해선 20~30%의 세액공제를 지원하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이 역시 대규모 투자 여력이 있는 삼성전자에나 해당한다는 게 업계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산업은행의 금융지원 프로그램도 파운드리의 특성을 고려하면 그 규모가 너무 작다”고 호소했다.

시스템 반도체 강국으로 꼽히는 대만에서는 세계 최대 파운드리 TSMC뿐만 아니라 중소 파운드리가 함께 성장했다. TSMC가 첨단 공정을 활용해 애플, 퀄컴, 엔비디아 등의 반도체를 생산할 때 뱅가드 등 중견 파운드리는 아날로그 반도체에 특화된 ‘맞춤형 서비스’로 관련 생태계를 뒷받침했다.

반면 국내 파운드리 생태계는 삼성전자를 제외하곤 열악하다. SK하이닉스시스템IC는 중국 이전을 추진 중이다. 매물로 나온 매그나칩반도체에는 중국 자본이 ‘눈독’을 들이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삼성을 ‘한국판 TSMC’로 키운다고만 할 뿐 ‘한국판 뱅가드’ 육성에는 소홀한 것 아닌지 되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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