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내부고발자 입막은 검찰

이주현 지식사회부 기자 deep@hankyung.com
“청와대 압수수색은 형사법에 따라 곤란한 사정이 있어 이뤄지지 못한 점도 있다.”

지난 25일 이른바 ‘환경부 블랙리스트’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검찰이 내놓은 말이다. 이날 검찰은 청와대 특별감찰반의 민간인 사찰 의혹에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청와대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에서 기각돼 수사가 어려웠다는 취지의 내용도 덧붙였다.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충분한 수사 없이 ‘꼬리 자르기’ 수사를 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윗선을 수사할 때 무뎠던 칼날은 내부고발자를 향할 땐 날카로웠다. 검찰은 환경부 블랙리스트를 처음 제기한 김태우 전 수사관을 공무상비밀누설 혐의로 기소했다. 김 전 수사관이 폭로했던 내용 16건 중 5건을 기소 대상으로 판단했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 박형철 반부패비서관 등 윗선 인물을 소환 조사하지도 못한 채 공익신고자를 형사처벌 대상으로 삼았다. 검찰은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에 대해서는 구속영장 청구가 기각되자 재청구를 하지 않았다. 검찰은 “청와대 내부 이야기여서 환경부에서 압수수색한 자료만으로는 규명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수사 한계를 자인했다.

정부 부처 내 내부고발자가 나올 길은 사실상 막혔다. 검찰이 윗선을 충분히 수사하지 못한다는 인식이 퍼질수록 공익신고자의 부담도 커져서다. 공익신고를 하려는 자는 비위로 의심되는 사항의 유죄 판결을 이끌어낼 수 있을 정도까지 직접 증거 수집을 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 게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국가기관인 검찰도 못한 청와대 수사를 내부고발자에게 맡기는 격이다. “공익 침해 행위가 최종적으로 사법당국에 의해 밝혀진 경우에만 공익신고자라고 한다면 누가 공익신고를 하겠느냐”는 박은정 국민권익위원장의 우려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검찰은 고발 및 수사 의뢰가 들어온 과학기술정보통신부·산업통상자원부·국가보훈처 등 타 부처의 블랙리스트 의혹을 놓고서도 수사를 이어간다. 이번에도 수사의 칼끝은 현 정부 부처를 향한다. 같은 날 야당인 자유한국당이 내놓은 “검찰의 살아있는 권력 보위가 애달플 지경”이라는 내용의 논평이 다음 수사에서도 계속 나올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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