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장맛처럼 우러난 색채미학

김종순 씨 그림손갤러리 개인전
김종순 씨의 ‘암묵적 침묵’.
한국화가 지전 김종순 씨의 개인전 ‘물이 만든 색과 화면’이 7~13일 서울 인사동 그림손갤러리에서 열린다. 물이 만든 색과 화면은 문자 그대로 물을 진득하게 머금은 전통 한지 캔버스와 색채를 말한다. 고향 장맛처럼 우러난 색채의 아우라를 늦가을 좋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화가의 마음을 담았다. “볼수록 행복해지는 작품이 됐으면 한다”는 작가의 말이 따뜻하게 다가온다.

어린 시절 소아마비에 걸려 거동이 다소 불한 김씨는 제도권 미술 교육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미술에 대한 끊임없는 수련과 연습으로 묵화는 물론 서예, 현대미술까지 섭렵했다. 1999년과 2000년 대한민국 미술대전 사군자 부문에서 입상하며 주목받았다. 평생 붓을 놓은 적이 없으니 그림과 동행한 25년의 세월이 이제 무르익어 색채 미학으로 빛나고 있다. ‘획과 색’을 주제로 한 이번 전시에는 다채로운 단색으로 화면을 구성한 명상적이고 시적(詩的)인 추상화 30여 점을 건다.“전통적인 채색의 물성과 동양화 모필, 가는 실을 활용해 단색화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고 싶어요.” 색을 머금은 물감과 물이 만나 이룬 농도, 질감을 만들어 ‘색채 언어’를 창조하고 싶다는 얘기다.

그의 작품은 얇은 한지를 20겹 정도 깔고 무수히 반복하는 획으로 캔버스에 색을 먹이면 아래로 깊숙이 침투됐다가 다시 밑에서 위로 우러나온다. 화면이 흠뻑 젖은 한지가 마르면 한폭의 그림이 완성된다. 단색으로 칠해진 화면이지만 물감이 흘러내린 자취가 은은한 흔적을 남긴다. 작가는 “색이 있어 형(形)이 되고, 음(音)이 있어 형이 되는 경지를 형상화란 것”이라고 설명했다. 분명 단색의 추상화를 보여주지만 즉물적인 색채의 면이나 단색주의(모노크롬)의 구현이 아니라 색을 공들여 바르고 삼투시켜 이룬 촉각적 감성이 이채롭다.

세상에 없는 색을 만들고 싶다는 그는 “유명 작곡자들의 음악을 들으며 작업한다”며 “역동적인 선율은 꿈틀거리는 직선으로, 현의 떨림은 솟구침 등의 형태로 승화시킨다”고 얘기했다. 가령 슈베르트의 ‘죽음과 소녀’를 듣고는 화면에 상실의 이미지를 선과 색채로 수놓고, 프랑스 작곡가 생상스의 ‘서주와 론도를 위한 카프리치오’를 통해서는 상실의 의미를 끄집어낸다. 또 토마소 안토니오 비탈리가 작곡한 ‘바이올린과 통주저음을 위한 샤콘 사단조’에서는 생명의 탄생 이미지를 색칠한다.미술평론가 박영택 씨는 “무수하게 올려내는 그의 붓질은 다분히 수행적”이라며 “지극한 정성으로 칠하고 매만져 이룬 색채들은 작가의 신체, 감정, 간절한 기원 등이 켜켜이 쌓여 있는 공간”이라고 평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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