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빅 브러더'와 '블랙테크'

고두현 논설위원
‘4월 어느 날, 날씨는 맑고 쌀쌀했다. 괘종시계가 13시를 치고 있었다.’ 영국 작가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의 첫 문장이다. 영국의 4월은 날씨가 나쁜 ‘잔인한 달’이고, 13은 서양인에게 불길한 숫자다. 첫장부터 정보독점으로 사회를 통제하는 ‘빅 브러더(big brother)’의 출현을 암시한다.

소설 속의 ‘빅 브러더’는 텔레스크린이라는 특수화면으로 모든 사람을 감시한다. 요즘처럼 인터넷이나 폐쇄회로 TV(CCTV)가 나오기 전이지만, 상상 속의 첨단기기가 다 등장한다. 감시 방법도 기상천외하다. 식민지 미얀마의 제국경찰로 근무했던 작가의 경험이 녹아 있다.소설 출간 70년이 지난 지금 세계 곳곳에서 ‘빅 브러더’를 떠올리게 하는 감시가 이뤄지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곳은 중국이다. 뒤늦게 뛰어든 4차 산업혁명 기술을 이용해 ‘14억 인구 총감시사회’로 들어서는 모양새다. 정부가 인공지능(AI)과 얼굴 인식, 빅데이터 기술로 공산당에 반하는 행동을 일일이 통제하기 시작했다.

로이터통신은 지난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 기간에 중국 당국이 스마트글래스(투시안경)로 블랙리스트 용의자를 색출하는 ‘블랙테크(black tech)’ 시험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블랙테크는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은 첨단 기술’을 뜻하는 용어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이 말이 첨단 감시시스템으로 쓰인다.

경찰은 안면인식 기능을 장착해 범죄 여부를 곧바로 감별하는 이른바 ‘터미네이터 안경’으로 행인과 차량을 감시한다. 최근에는 휴대전화까지 불심검문하고 나섰다. 휴대폰에는 사용자가 어떤 정보를 찾아봤고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민감한 정보가 담겨 있다. 사람들의 머릿속 생각까지 감시하겠다는 얘기다.중국 군부대와 정보기관들은 새 모양의 정찰 드론(무인항공기)인 ‘비둘기 로봇’으로 사람들의 일상을 염탐하고 있다. 공장에서는 근로자의 감정까지 실시간으로 추적한다. 무선 센서가 장착된 모자를 쓰고 일하도록 한 뒤 뇌파(腦波)를 수집해 인공지능 컴퓨터로 분석하는 방식이다.

국제사회 일각에서는 이런 중국을 거대한 ‘파놉티콘(죄수를 효과적으로 감시하기 위한 원형 감옥)’이라고 지적한다. 다른 나라에서도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기술이 쓰이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인권조례’가 미진하다. 더 큰 문제는 이런 감시가 중국 국경을 넘어 다른 나라로까지 확대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얼마 전 중국 브랜드의 가정용 로봇청소기에서 심각한 보안 문제가 발견됐다. 도청, 감시, 개인정보 도용 등이 가능한 것으로 확인됐다.

같은 기술이라도 쓰임에 따라 효과가 천차만별이다. 소가 마신 물은 젖이 되고 뱀이 마신 물은 독이 되는 것과 같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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