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개 벤처 육성해도 인수는 '0'… '제2 김기사' 왜 못나올까

차세대 성장전략 오픈이노베이션
(2) 벤처 M&A로 회수시장 키워야

M&A로 벤처자금 회수
미국은 82% vs 한국은 2%

기업문화 차이가 M&A 막아
아마존, 9년 실패 끝에 급성장
적자 버텨낼 韓대기업 거의 없어

인수할 만한 스타트업 못찾아
조직문화 달라 소통도 어려워
협업 통해 수익모델부터 개발해야
감자 재배 농가 농장주가 스마트폰을 활용해 ‘지능형 관수관비 솔루션’을 작동하고 있다. /SK텔레콤 제공
2015년 카카오가 내비게이션업체 김기사를 626억원에 인수했다. 반향은 컸다. 대기업이 벤처기업을 인수한 드문 사례였기 때문이다. 이후 3년간 국내에서 대기업이 벤처기업을 거액(?)에 인수한 케이스는 없었다. 대기업이 벤처기업 인수에 나서지 않아 ‘회수 시장’ 침체는 여전하다. 그 결과는 수치로 나타난다. 벤처기업 창업자나 투자자들이 인수합병(M&A)을 통해 자금을 회수한 비율은 한국이 2%, 미국은 82%다. 국내 대기업이 1000개 정도의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을 지원·육성하고 있지만 정작 인수는 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개방형 혁신(오픈 이노베이션)’ 생태계가 자리잡으려면 자금력을 갖춘 대기업이 기술력 있는 벤처기업을 적극 인수하는 등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문화 차이로 성공 사례 못 만들어대기업이 인수에 소극적인 이유는 다양하다. 우선 사회적 인식 문제다. 과거 대기업의 벤처기업 인수를 바라보는 시선은 싸늘했다. 벤처업계 관계자는 “최근까지만 해도 국내에서 대기업이 벤처기업을 인수하면 ‘문어발식 확장을 했다’ ‘중소기업 영역까지 침범했다’는 비난 여론을 피할 수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나서서 “대기업이 벤처기업을 인수할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하겠다”고 말할 정도다. 벤처업계 분위기도 비슷하다.
이 같은 분위기 전환에도 대기업이 벤처기업 인수에 소극적인 이유는 각종 규제 외에도 또 있다. 우선 문화적 차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인수한 벤처기업과 기존 대기업 멤버가 회의를 하면 중간에 통역이 필요할 정도다. 언어와 종족이 다르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벤처기업이 대기업 계열사가 되면 특유의 기업문화를 유지할 수 없게 되는 문제도 있다. 분기, 연 단위로 실적을 보고하다 보면 적자를 내면서도 꾸준히 연구할 수 있는 분위기가 사라져 모범 사례는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한 대기업 벤처투자 담당자는 “전문경영인이 2~3년에 한 번 바뀌는 것도 벤처기업 인수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사장이 바뀌면 과거 경영자가 한 일에 큰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 경험을 한 사람도 많다.

특허권(지식재산권)에 대한 낮은 인식도 대기업이 인수 필요성을 못 느끼게 한다는 지적이 있다. 한 벤처기업 관계자는 “한국에선 특허권 보호 장치가 약해 기술을 보유한 기업을 인수하는 것보다 기술을 베끼는 비용이 훨씬 적게 드는 구조”라고 말했다. 대기업이 인수할 만한 벤처기업이 국내에 많지 않다는 의견도 나온다. 웬만한 기술력으로는 기존 대기업이 원하는 수준을 맞추지 못한다는 얘기다.수익모델 함께 만들어 ‘윈윈’

이런 상황을 극복하는 방법에 대해 전문가들은 우선 대기업과 벤처기업의 접점을 넓혀야 한다고 말한다. 오랜 기간, 다양한 방식으로 함께 일하면서 서로에게 익숙해진 뒤 인수하면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는 얘기다. 대기업 지원을 받은 벤처기업이 사업을 성공으로 이끄는 사례가 하나둘 나오고 있다.

날씨에 맞춰 농작물에 자동으로 물과 양분을 주는 시스템을 개발한 농업 벤처 스마프는 SK텔레콤의 도움을 받아 아이디어를 사업화했다. SK텔레콤은 사무공간과 자금은 물론 스마트팜 기술을 작동하는 데 필요한 사물인터넷(IoT) 통신망을 제공했다. 수익모델도 함께 구축했다. 가공용 감자 재배 농장을 타깃으로 설정한 뒤 식품업체 오리온을 찾아가 함께 사업구상을 설명했다. 감자 재배 농장 두 곳에 시스템을 적용한 결과 생산량이 20~30% 늘어난 것을 확인했다.자동 물걸레 청소기업체 에브리봇은 GS홈쇼핑과 협업해 성과를 냈다. 에브리봇은 2016년 바퀴 없는 물걸레 전용 로봇 청소기를 개발했다. 하지만 브랜드가 널리 알려지지 않아 고전했다. GS홈쇼핑이 나섰다. 에브리봇은 GS홈쇼핑을 통해 200억원 이상을 판매했다.

정부도 대기업과 스타트업의 결합을 통해 혁신성장을 유도하고 있다. 홍 장관은 “대기업은 사업화와 해외 진출 등에 어려움을 겪는 스타트업을 성장시키고 스타트업은 대기업에 다양한 아이디어와 사업 기회를 제공해줄 수 있다”며 “서로 부족한 부분을 메우는 개방형 혁신의 대표적 모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전설리/김기만 기자 slj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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