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리포트] 기계가 알아서 분유 탈 순 없나? 주방 불편 날린 '맘'

강미선 피에나 대표

우울증에 '유리천장' 부딪히며 사업…무선 믹서 등 제품 편의성 입소문

한투파트너스·베이징팡정 투자 유치…올해 중국·유럽 등 수출 본격화
"한국의 다이슨 평가 받고 싶다"
강미선 피에나 대표가 자체 개발한 휴대용 믹서를 소개하고 있다. 이승우 기자
막 아이를 낳았는데 난치병에 걸렸다. 이름조차 생소한 ‘기립성 저혈압’. 누우면 괜찮은데 일어서면 어지럽다. 캐나다에 살고 있어 의지할 사람도 없었다. 아이를 키우기가 너무 어려웠다. 그중에서도 분유 만들기는 골칫거리였다. 몸을 움직이기도 힘든데 한밤에 일어나 물을 끓이고 분말을 타고 다시 식혀야 했다.

산후우울증까지 겹쳤다. 지쳐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은데 업(業)을 만들 생각을 했다. “물과 분말만 넣으면 알아서 적정 온도의 분유가 만들어지는 기계가 있으면 어떨까.” 소형 가전제품을 생산하는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피에나는 이렇게 시작됐다.

피에나 창업자인 강미선 대표는 삼성전자 반도체 엔지니어 출신이다. 캐나다 업체에 스카우트돼 10여 년을 그곳에서 살았다. 캐나다에서 출산과 난치병으로 어려움을 겪었고, 자신이 겪은 불편을 해결하고자 한국으로 돌아와 창업했다.

주요 제품은 분유 제조기와 휴대용 믹서(블렌더) 등 주부로서 체감한 불편함을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다. 하드웨어 사업은 여성이 하기 쉽지 않다. 강 대표는 “금형을 주문하러 업체에 갔더니 ‘왜 사장이 안 오고 여직원이 왔느냐’는 얘기도 들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어려움이 적지 않았지만 강 대표는 ‘정면 돌파’로 극복해냈다. ‘하면 된다’는 자세로 스타트업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여러 성과도 일궈냈다.

지난해 출시한 무선 블렌더는 김영세 이노디자인 회장이 디자인했다. 이름 없는 스타트업 제품을 한국 최고의 산업디자이너가 디자인했다는 게 의아했다. 사정을 묻자 강 대표는 이렇게 답했다. “제품을 구상하다 김 회장님이 디자인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이노디자인에 전화해서 무작정 회장님을 바꿔달라고 했지요.” 결국 김 회장은 디자인을 맡았고 피에나에 투자까지 했다.

피에나는 한국과 중국에서 투자를 받았다. 시리즈A에 해당하는 투자는 한국 최대 벤처캐피털인 한국투자파트너스에서 받았다. 한국투자파트너스는 초기 기업에는 잘 투자하지 않는 곳이다. 피에나에 투자한 것 자체가 상당히 이례적이다. 중국에서는 중국 10대 그룹 중 하나인 베이징팡정에서 투자받았다. 투자 유치 비결을 묻자 강 대표는 “KOTRA 소개로 만났는데, 여러 번 만나며 꾸준히 피에나 아이템을 설명한 결과”라고 말했다. 특별한 비결은 없었다는 얘기다.‘정면 돌파’ 정신은 조금씩 실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지난해 매출은 10억원 수준이지만 올해는 무선 블렌더의 중국, 유럽 수출이 본격적으로 늘어나면서 두 배 이상의 성장을 기대하고 있다. 모바일 기반 스타트업에 비하면 매출 성장 속도가 느리지만 “하드웨어는 기획부터 제조까지 4~5년 이상 걸린다”는 게 강 대표의 설명이다. 그는 “세상에 없는 소형 가전을 제대로 만들어 한국의 다이슨이라는 평가를 받고 싶다”고 말했다.

남윤선 기자 inkling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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