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운 전 경상일보 논설위원, '울산 민주투사 정계석 추모 평전 발간'

1970년대 울산에서 민주화 운동을 주도하다 국군 보안사의 모진 고문 후유증으로 숨진 고(故) 정계석 씨(1977년 사망) 추모 평전이 발간됐다. 장성운 전 경상일보 논설위원이 정 씨의 40주기(2017년 2월)에 맞춰 펴낸 것이다.

울산시 북구 천곡동 속심이 마을에서 태어난 정 씨는 26살인 1960년 울산 최연소로 제3대 농소면의원에 당선됐다. 정 씨는 농소면의회 부의장으로 활동하면서 부당한 비료 배분을 놓고 면장 탄핵을 주도하기도 했으며, 무장 공비에 의해 소실(燒失)된 호계역사의 조속한 재건축을 촉구하기도 했다.정 씨의 발언록 등이 담긴 당시 농소면의회 속기록은 현재 울산시의사당 1층 홍보실에 전시돼 있다. 농소면의회 등 3대 지방의회는 5·16 군사 쿠데타로 8개월 만에 폐쇄됐다.

정 씨가 민주화운동에 강한 인상을 남긴 것은 박정희-김대중 전 대통령이 맞붙은 7대 대선에서였다. 정 씨는 신민당원으로 울산 방어진 개표소 참관인으로 참가했다. 개표가 끝나갈 무렵 박 모 선거관리위원장이 박정희 후보의 표를 무더기로 투표함에 넣는 것을 발견했다.

정 씨는 개표 중지 요청과 함께 박 위원장과 투표함을 트럭에 태우고 울산 시계탑 사거리까지 와 시민들과 규탄대회를 열었다.최형우 전 내무부장관의 울산 지구당 수석 부위원장으로 활동했던 정 씨는 박정희 정권의 장기집권 음모인 1972년의 10월 유신 선포 직후 부산의 국군 보안사로 연행됐다.

전기와 고춧가루물고문, 몽둥이 구타 등 온갖 고문을 받아 수차례 실신하기도 했다. 군사재판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으나 고문 후유증 때문에 병보석으로 석방됐지만 5년만인 1978년 2월 숨졌다.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이우정)은 ‘정계석 씨는 민주화운동을 이유로 유죄판결을 받은 자로서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 제2조 제2호 라목에 의한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한다’는 통지서를 2001년 8월 가족들에게 발부했다.

울산=하인식 기자 ha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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