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추천 총리' 수용한 朴대통령…정국 실타래 풀어낼까

정세균 의장 찾아가 '국회의 총리 추천' 수용키로 공식 표명
야당 요구 수용해 해결 '급물살'…총리 권한과 2선 후퇴 등 쟁점도 남아

박근혜 대통령이 8일 최순실 비선 실세 의혹 사건으로 혼돈에 빠진 정국을 풀기 위해 '김병준 책임총리' 카드를 사실상 접었다.박 대통령은 이날 오전 전격적으로 국회를 방문, 정세균 국회의장과 만나 "좋은 분을 추천해준다면 그분을 총리로 임명해서 실질적으로 내각을 통할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공개 표명했다.

김 내정자를 포기하고 원점에서 국회와 협의해 내각을 구성할 수 있다는 취지여서 야당의 요구를 대체로 수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박 대통령은 새 총리에 대한 권한 이양을 명확히 하고, 야당이 반대하는 인사는 안 된다는 정 의장의 조언에 "알았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져 정국 수습 작업에 급물살을 탈 조짐이다.이날 박 대통령의 행보는 국회 방문이라는 형식이나 발언 내용 면에서 파격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제안한 여야 영수회담을 야당이 거부하면서 외통수에 몰렸다는 점을 고려하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하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박 대통령에게 총리 내정을 철회하고 국회에서 추천하는 총리에게 전권을 넘기지 않으면 영수회담을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전날 영수회담 조율을 위해 국회를 찾은 한광옥 대통령 비서실장의 예방을 거부할 정도로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이에 한 비서실장은 김 내정자의 지명철회와 관련해 "그 문제까지 영수회담에서 하자는 이야기"라며 일단 회담만 성사되면 얼마든지 논의할 수 있다는 전향적 태도를 보였으나, 야당의 닫힌 문은 끝내 열리지 않았다.

따라서 박 대통령은 민주당 출신이자 국회를 대표하는 정 의장과 만나 야당 요구의 수용 의지를 공개적으로 표명하고, 직접 국회를 찾아 사태 해결을 바라는 진정성을 보여줌으로써 야당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이런 결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여기에는 사태 수습을 위해 필요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대통령은 오는 10일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할 예정이어서 늦어도 9일까지 야당과 협의를 마쳐야 한다는 입장이다.

또 오는 12일 대규모 촛불집회 전까지 민심을 다독이려면 금주 중에 수습책의 가닥을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당이 12일 집회에 맞춰 거리로 나가 장외투쟁을 벌일 예정이라는 점도 고려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날 박 대통령의 국회 방문으로 논의의 물꼬가 트였다고 해서 불길을 다 잡았다고 속단하기는 이르다.

가장 큰 쟁점은 국회 추천 총리에게 얼마나 많은 권한을 보장할 것인지, 박 대통령이 2선 후퇴를 명시적으로 밝힐지 등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전날 기자들과 만나 "2선 후퇴라는 게 현행법상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라면서 "업무 수행과정에서 총리가 실질 권한을 갖느냐의 문제이지 용어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지 않는다"고 밝혀 야당과 시각차를 보였다.

이 관계자는 또 박 대통령이 외치(外治), 총리가 내치(內治)를 담당하는 모델에 대해서도 "현행법상 최대한 정치적으로 여야 간 협의를 통해 김 내정자에게 책임총리 (권한을) 주겠다는 쪽으로 이해해야 한다"며 "개헌도 안 된 상황에서 대통령께서 모든 것에서 물러나 일하는 그런 상황은 없는 것 아니겠는가"라고 강조했다.

반면 야당 내에서는 내치는 물론 외치까지 손을 떼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고, 여당 일각에서도 박 대통령의 2선 후퇴는 물론 탈당까지 요구하고 있어 후속 논의 과정에서 마찰이 빚어질 가능성이 크다.정세균 국회의장도 박 대통령으로부터 '국회 추천 총리'를 요청받은 자리에서 "국회가 적임자 추천을 하면 임명을 하고 권한을 부여해야 하고 차후 권한부여에 대한 논란이 없도록 깔끔히 정리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한 것도 이 같은 논란을 염두에 둔 것이다.

(서울연합뉴스) 강건택 기자 firstcircl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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