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 새로 쓸 '제2 신의 입자'는 없었다"

ICHEP 공식 발표

"LHC가 발견한 새 입자 흔적, 통계상 우연히 나온 신호일 뿐"
우주 규명 단서 '미궁 속으로'
스위스와 프랑스 국경 지대에 있는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대형 검출장치인 거대강입자가속기(LHC) 모습.
지금껏 교과서에는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은 새 입자를 발견했다며 들떠 있던 물리학계가 큰 실망에 빠졌다.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대형 검출장치인 거대강입자가속기(LHC)가 포착한 새 입자의 신호가 오류로 결론 났기 때문이다.

지난 3일부터 미국 시카고에서 열리고 있는 제38회 국제고에너지물리학술대회(ICHEP)에 참석한 물리학자들은 “LHC에 설치한 뮤온압축솔레노이드(CMS) 검출장치와 아틀라스 검출기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발견된 새 입자 흔적은 통계적으로 우연히 나온 신호에 불과했다”고 발표했다.새 입자가 발견되면 인류가 우주를 설명하기 위해 만든 표준모델이 도전을 받게 된다. 표준모델에서는 우주가 물질을 구성하는 6쌍 입자와 힘을 전달하는 4개 입자로 구성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LHC는 2012년 ‘신의 입자’로 불리던 힉스 입자를 발견하고 잠시 휴식에 들어갔다. 그리고 충돌에너지를 2배 높여 새 입자를 찾는 실험을 다시 시작했다.

과학자들은 몇 달 뒤인 지난해 6월 놀라운 신호를 포착했다. 약 13테라전자볼트(TeV) 에너지로 양성자를 충돌시킨 결과에서 질량이 750기가전자볼트(GeV)인 신호가 포착됐다. 힉스 입자는 양성자를 8TeV로 가속했을 때 125GeV 영역에서 검출됐다. 첫 신호가 아틀라스 검출기에서 발견되고 나서 CMS에서도 비슷한 신호가 잡혔다.

과학자들은 두 검출기에서 동시에 나타난 이 신호가 그간 발견되지 않았던 새 입자일 가능성이 크다고 추정했다. 불과 수개월 만에 이 신호를 분석한 논문만 500편이 넘게 발표됐다. 서울대, 경북대, 한양대 등 국내 6개 대학 연구진이 함께하는 한국CMS실험팀도 분석에 참여했다. 하나의 신호를 바탕으로 짧은 기간에 이처럼 많은 논문이 쏟아진 건 이례적이다.교과서를 새로 쓸지도 모른다는 기대는 물거품이 됐다. 두 검출기를 담당한 과학자들은 지난 5일 더 많은 자료를 바탕으로 분석한 결과 새 입자일 가능성이 없다고 공식 발표했다. 아틀라스 실험팀을 이끄는 데이비드 찰튼 영국 버밍엄대 교수는 “두 검출기에서 처음 데이터를 수집했을 때만 해도 새 입자의 존재를 알리는 신호라고 확신했지만 결국 우연의 일치에 불과하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말했다. 티지아노 캄포레시 CERN 대변인 역시 “우리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고 했다.

LHC 연구에는 세계 2000명이 넘는 과학자가 참여하고 있다. 기대한 입자 검출에 실패하면서 참여 과학자의 실망도 그만큼 크다. 과학자들이 너무 흥분한 나머지 샴페인을 일찍 터뜨렸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인규 서울시립대 교수는 “새 입자를 발견했다고 확신하지는 않았지만 어느 정도 기대를 걸었던 것은 사실”이라며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크다”고 말했다.

새 입자를 발견하지 못해도 당장 일상의 삶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과학자들이 그럼에도 새 입자 발견에 목을 매는 이유는 인간이 사는 우주를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기 위해서다. 인간이 아는 우주는 전체 우주의 4%에 머문다. 나머지 96%를 차지하는 보이지 않은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는 아직 미궁 속에 있다. 과학에선 실제 존재하는지조차도 모르는 새 입자를 발견하려는 연구를 미지의 세계로 향한 문을 두드리는 행위로 묘사하곤 한다.세계 과학자들이 지하 100m 깊이에 둘레가 27㎞에 이르는 거대한 LHC를 설치하고 끊임없이 실험에 몰두하는 이유다.

몇몇 과학자는 새 입자가 힉스 입자를 발견한 것보다 어렵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이번에 여전히 그 문이 굳게 닫혀 있다는 점을 절감한 셈이다. 찰튼 교수는 “새 입자는 과학자들이 그간 보지 못한 더 복잡한 특성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며 “올해는 새 입자를 못 봤지만, 앞으로 더 많은 시험을 통해 새 입자 검출 연구를 계속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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