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운동사 서린 평화시장 일대 전태일기념관 건립

서울시 "역사 기록뿐만 아니라 일대 명소화 목적"

지금도 평화시장 일대에는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분신한 전태일의 흔적이 곳곳에 남았다.전태일 흉상, 전태일다리, 전태일거리가 조성됐지만 선거 때 정치인들이 노동 관련 공약을 발표하거나 노동단체 행사일을 제외하면 잊힌 처지다.

서울시는 한국 노동운동사에서 중요한 기점을 마련한 전태일의 역사와 의미를 재조명하고자 그가 평생 일한 평화시장 근처에 전용 기념관 건립을 추진한다고 22일 밝혔다.

서울시 일자리노동국 관계자는 "평화시장이 워낙 낙후한 데다 전태일다리 등 기념시설이 있어 스토리텔링을 하고 있지만 역사가 깊은 자리로서 크게 드러나지 못했다"며 "기념관을 세워 일대를 명소화해보자는 취지"라고 말했다.시는 기념관 건립 타당성과 적정 부지를 마련하고 사회 합의를 도출하고자 4월부터 7월까지 5억원을 들여 '전태일기념관 건립 기본구상' 학술연구용역에 착수한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땅'이다.

기념관 건립은 전태일기념사업회 등 노동계 숙원이었다.몇 개 부지가 제안됐지만 대부분 너무 크거나 매입이 어려워 번번이 무산됐다.

평화시장은 낙후했지만 일대 지가는 높은 문제도 있다.

시는 연구에서 부지만 확정되면 기념관 규모와 전시 콘텐츠는 금방 결정된다고 설명했다.시 관계자는 "기념사업회가 가진 전태일 관련 기록물과 유산이 있다"며 "전시 방법과 공간 구성도 비슷한 유형의 기념사업 추진 사례를 분석해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자체 심의회도 구성된다.

서울시를 비롯해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서울노동권익센터 관계자 등이 참여해 기념관 건립과 일대 명소화 방안을 논의한다.

전태일은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채 17세부터 평화시장의 열악한 조건에서 일하다 어린 여성들이 병들고 해고되는 것을 보며 노동운동에 관심을 가졌다.

그는 노동환경을 개선하려 근로기준법을 공부하고 '바보회'를 만들어 노동환경을 조사하다 1969년 해고됐다.

그는 1970년 평화시장으로 돌아와 '삼동회'를 조직, 노동환경 설문지를 돌려 청와대 등에 진정서를 내기도 했다.

전태일은 같은 해 11월 평화시장 앞에서 근로기준법 화형식을 벌이려다 시위가 무산될 분위기가 감지되자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분신해 숨을 거뒀다.이 사건은 우리 사회가 노동문제에 관심을 갖고, 노동자 스스로도 환경을 개선하려 노력하는 계기가 돼 1972년 유신체제 전까지 노동운동이 활발히 이뤄졌다.

(서울연합뉴스) 이정현 기자 lis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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