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한국 LPG자동차의 역사①-도입의 시작은 버스

액화석유로 불리는 LPG가 국내에서 자동차 연료로 사용된 때는 1960년대 후반이다. 특히 한국에서 LPG가 본격 생산된 이후 개조를 통해 자동차에 사용됐고, 이후 1970년대 LPG 연료가 택시에 사용될 수 있도록 법적 정비가 완료된 후 1982년 자동차회사가 LPG 전용 엔진을 처음 만들어 판매했다. 그러니 한국 내 LPG자동차의 역사도 벌써 50년이 훌쩍 넘은 셈이다. 덕분에 LPG엔진 기술은 한국이 글로벌 최고 수준으로 평가된다. 이에 본지는 그간 국내에서 잘 알려지지 않았던 LPG자동차의 한국 내 역사를 정리해 보려 한다<편집자>.

-미국서 들어온 LPG, 한국 버스에 적용되기까지
세계에서 세 번째로 가장 많이 쓰이는 수송용 화석연료로 액화석유가스(LPG)가 꼽힌다. 그런데 LPG를 언급할 때 빠질 수 없는 인물이 있다. 1873년 미국에서 태어난 투자가 '프랭크 필립스(Frank Phillips)'와 1880년 출생한 화학자 '월터 스넬링(Snelling)'이다. 하버드와 예일, 조지 워싱턴 대학 등에서 화학을 공부한 스넬링은 1910년 휘발유보다 탄소 배출이 적은 프로판(Propane)의 존재를 처음 확인한 뒤 액상화에 성공했다. 당시 그의 발견(?)에 대해 뉴욕타임즈는 그해 3월31일자 신문에서 "쇠로 만든 병에 연료가 담겨 일반 가정에 3주면 도달할 수 있게 됐다"는 논평을 게재하기도 했다. 스넬링은 LPG의 상업화를 위해 '아메리칸 가솔(Gasol) 컴퍼니'를 설립했다.

하지만 초기 LPG 판매는 부진했다. 이미 휘발유와 경유 등이 수송연료 시장을 지배하고 있었던 데다 당시만 해도 탄소 배출 감축은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LPG의 미래 시장 가능성을 내다 본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프랭크 필립스다. 필립스는 5만 달러에 스넬링의 프로판 특허를 구입한 뒤 필립스석유를 설립했고, 전문적인 LPG 제조사로 키워나갔다. 당시 미국 내 LPG 수요는 조금씩 늘어갔는데, 특히 휘발유와 동일한 연료 특성이 알려지면서 1928년 수송용 트럭에 처음 사용되는 등 난방 및 취사용에서 수송용으로 첫 발을 내딛었다.

이후 LPG는 2차 대전 이후까지 미국 가정의 62%가 사용할 만큼 대중화됐고, 1950년에는 미국 시카고 교통국이 대중 버스에 LPG 사용을 허용하면서 1,000대의 LPG 버스가 운행됐다. 또한 밀워키에선 270대의 택시가 LPG로 전환돼 LPG 자동차 시대가 본격 개척됐다. 그러자 1965년 쉐보레가 상용차에 4가지 LPG 전용 엔진을 탑재하면서 자동차회사도 LPG 엔진 개발에 뛰어들었다. 미국에서 시작된 LPG는 유럽에도 번졌다. 1930년대 중반 프랑스에 LPG가 들어왔는데, 전용 용기에 담긴 연료로 수입된 탓에 가격이 비쌌다. 그러자 1938년 이탈리아의 리퀴드가스社가 베네치아 근처에 LPG 주입 공장을 만들며 가격을 크게 낮출 수 있었다.


한국의 경우 LPG는 1959년 주한미군이 사용하던 것을 일부 부유층이 가정용에 활용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가격이 비쌌다. 그러다 1960년대 초반 중동 산유국이 LPG를 일본으로 수출했고, 일본으로 건너간 LPG는 자연스럽게 한국으로 유입됐다. 소량이 유입되던 LPG는 사용 편리성 때문에 수요가 증가했고, 일부 가스 판매 사업자들은 일본과 수입 계약을 속속 체결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1964년 사단법인 '푸로판까스LPG공업협동조합'을 설립해 본격 유통에 나섰는데, 계기는 국내에서도 LPG 완제품이 생산됐기 때문이다. 당시 조합의 인사말을 그대로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 하에 이뤄진 대한석유공사울산공장에서 새로운 푸로판까스(액화석유까스)를 생산하여 국민경제에 이바지하게 되었음을 동경해마지 않습니다. 금번 회원 상호간의 친목과 안전합리적인 고도의 기술을 연마하여 화학연료부문의 건전한 발전에 기어코저 사단법인 한국푸로판까스(LPG)공업협회를 창립하였기에 지상을 통하여 인사말씀을 대하오니 강호제현의 애호가 있으시길 경망하나이다”로 기록돼 있다(1964년 6월2일 동아일보).

당시 협회 창립에 참여했던 기업은 고려와기공업, 대성련화, 도일물산, 동양까스연료, 삼정까스공업, 태아산업, 판본무역, 한국까스공업 등이다. LPG를 수입, 판매하는 사업자로 구성된 조합이 처음 탄생한 셈이다.

판매사업자와 함께 대한석유공사도 본격적인 LPG 홍보에 착수했다. 대한석유공사는 1966년 '새 시대의 연료'라는 제목으로 LPG 광고를 게재했는데, 내용은 '프로판부탄까스'의 장점과 올바른 사용법에 맞춰졌다. 또한 가격도 10㎏ 한통에 420원이면 5인 가족의 한 달 연료로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주목할 점은 당시 석유공사가 LPG를 홍보하면서 드러냈던 활용처다.

"프로판까스는 가정용 연료 외에도 공업용 연료를 비롯한 농업용, 영업용 및 수송용연료 등으로 널리 이용되고 있으며, 공업용 연료인 부탄까스는 10㎏당 397원이오니 유의하신 분은 언제나 당공사로 문의하시면 성심껏 협조하여 드리겠습니다(1966년 6월29일 매일경제)." 여기서 대한석유공사가 언급한 수송용은 같은 달 최초로 시도됐던 LPG 버스를 의미한다. 1966년 6월 당시 한일개발(現 한진)LPG 사업부는 서울역에서 정릉을 왕복하는 휘발유 버스에 부탄가스 사용을 시도해 국내 최초의 LPG버스를 등장시켰다. 다시 말해 한국의 LPG자동차 역사가 시작된 기점이 바로 1966년이었다는 의미다. <2편에서 계속>

권용주 선임기자 soo4195@autotimes.co.kr
자료협조 : 대한LPG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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