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ONG KOREA] AP 보고 학생 뽑는 미국 아이비리그…한국도 대학 자율권 확대해야

기초 강해야 융합시대 승자 된다
(5·끝) 대입제도 바꿔야 과학인재 양성

작년 미국 AP 응시 234만명…10년 새 두배 늘어
한국에선 상위권 대학 대부분 학점도 인정 안해
서울과학고 1학년 대학과목선이수제(AP) 수업인 ‘일반물리학1’ 시간에 학생들이 앞에 나와 발표하고 있다. 김병언 기자 misaeon@hankyung.com
20일 오전 종로구 혜화동 서울과학고의 한 수학강의실. 3학년 학생들이 대학 1학년 과목인 미적분학1 수업을 듣고 있다. 교재 역시 대학생이 보는 두꺼운 영어 원서다. 정부로부터 과학영재학교로 지정된 이 학교는 KAIST 포스텍 등 5개 과학기술특성화대학과 연계해 AP(advanced placement·대학과목선이수제)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과학고여서 선행학습에 대한 욕구는 꾸준한데 정작 AP 학점 이수자가 누리는 혜택은 별로 없다는 게 학교 측 설명이다. 과기특성화대학에 진학하는 학생 외에는 학점을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학교 관계자는 “졸업생 중 절반 이상이 진학하는 서울대 등 상위권 대학에서 AP 학점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입시에 AP 적극 활용하는 미국AP는 미국의 비영리 교육기관인 대학위원회(College Board)가 1955년 처음 시작했다. AP 수업은 주로 고등학교에서 이뤄진다. 대신 대학위원회가 1년에 한 번(5월) 미국 전역의 고교생을 대상으로 AP 시험을 보고 학점을 부여한다. 학생들이 받은 학점은 대학 입시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미국 대학들은 대학입학자격시험(SAT) 성적을 자격 기준으로 활용하고 지원자의 AP 과목 이수 여부와 성적, 면접 결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학생을 선발한다. 한 입시 전문가는 “아이비리그 대학에 진학하려면 7과목 이상 AP 학점을 받아야 한다”며 “AP 성적이 좋으면 가산점이 붙어 그만큼 유리하다”고 말했다.

대학 입시에서 AP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AP 시험 응시생도 늘어나고 있다. 미 대학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내 AP 시험 응시자 수는 234만명이었다. 2004년(110만명)에 비해 두 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2006년 새해 연설에서 “미국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AP를 확대해야 한다”고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AP 규제로 꽉 막힌 한국정부는 창의융합형 인재를 키우기 위해 2018년부터 고등학교에서 문·이과 구분을 없애기로 했다. 통합과학, 통합사회 등을 모든 학생이 배우게 되면 융합교육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하지만 수학, 과학 교육 내용을 현재 문과 수준으로 낮추면 학생들의 기초역량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통합 교육과정을 계기로 우수 인재들이 이공계 기초과학 소양을 키울 수 있도록 미국처럼 AP 제도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는 이유다.

국내에서도 AP와 비슷한 제도를 도입했지만 대입 전형에는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교육부와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2008년부터 ‘고교-대학 연계 심화과정(UP)’을 운영하고 있다. 성적이 뛰어난 학생들이 주로 참여하지만 정작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 상위권 대학 상당수가 학점조차 인정하지 않고 있다.

미래창조과학부가 과학영재학교 4곳을 대상으로 운영 중인 AP 역시 KAIST 등 5개 과기특성화대학에서만 학점을 인정해줄 뿐이다. 대입 학생 선발 때 활용하는 것은 엄두도 못 낸다. 사교육 문제가 불거질 것을 우려해 정부가 엄격히 금지하고 있어서다. 교육부 관계자는 “AP를 입시에 반영하면 선행학습·사교육 열풍 등의 부작용이 빚어져 혼란을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무크 등장은 AP 활성화 기회

한국이 AP 활용을 머뭇거리는 동안 미국에선 주요 명문대학이 무크(MOOC·온라인공개강좌)를 기반으로 AP 강의를 앞다퉈 내놓고 있다. 미국의 무크 서비스 에드엑스(edX)는 지난해 10월 라이스대의 생물학 AP 수업을 시작으로 19개 강의를 온라인에 공개했다. 매사추세츠공대(MIT) 코넬대 UC버클리 등이 개설한 28개 강의도 추가로 공개할 예정이다. 오프라인 교실에서 AP 수업을 진행할 때는 참여 학생이 제한될 수밖에 없었지만 무크 강의를 개설하면서 원하는 학생은 누구나 AP 강의를 들을 수 있다. 전문가들은 시공간적 제약과 비용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무크의 등장으로 AP가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리드 휘태커 라이스대 디지털학습센터장은 “무료로 제공하는 강의들이 (AP의) 판도를 뒤흔들 것”이라고 말했다. 트레버 패커 대학위원회 선임부회장도 “에드엑스와 같은 무크가 활성화되면 학생들이 능력에 따라 다양한 AP 프로그램을 수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APadvanced placement. 대학 과정을 고등학교에서 미리 듣는 제도를 뜻한다. 고등학생들이 자신의 능력을 감안해 선택할 수 있다. 1955년 AP를 처음 시작한 미국에서는 고교생이 이수한 AP 학점을 대학에서 인정하고 입시에도 반영한다.

■ 특별취재팀=김태훈 IT과학부 차장(팀장), 임기훈·오형주(지식사회부), 강현우(산업부), 임근호(국제부), 박병종(IT과학부) 기자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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