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내 아이폰에 록밴드 U2 새 앨범을 넣어놨을까

이승우 기자의 디지털 라테
지난 9일 애플 신제품 발표회에서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왼쪽)와 록밴드 U2가 새 앨범 ‘송즈 오브 이노센스’를 아이튠즈 가입자에게 무료로 배포한다고 발표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애플은 지난 9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의 플린트센터에서 신제품 발표회를 열었다. 더 커진 디스플레이를 장착한 아이폰6와 아이폰6 플러스에 이목이 집중됐지만 이에 못지않게 의미가 큰 장면이 있었다. 바로 현존하는 최고의 록밴드 가운데 하나인 U2가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와 함께 나와 새 앨범 ‘송즈 오브 이노센스’를 애플 아이튠즈 가입자에게 무료로 배포한 것이다. 따로 다운로드할 필요조차 없었다. 발표회가 끝나자마자 세계 119개국 아이튠즈 가입자 5억명의 애플 기기에 이 앨범이 들어 있었다. 이 음반은 다음달 13일 CD와 LP, 디지털 음원 형태로 동시 발매된다. 아이튠즈 가입자는 내달 31일까지 무료로 음악을 들을 수 있다. 외신들은 이번 이벤트를 위해 애플이 1억달러 이상을 썼다고 보도했다.

최신 음악 서비스의 특징 (1)무료 감상 (2)선택 불가
애플과 U2의 이번 이벤트는 두 가지 점에서 상징적이다. 첫째는 무료로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고, 둘째는 음악을 선택하는 주체가 소비자가 아닌 플랫폼 사업자란 것이다. 둘 다 현재 음악 시장의 트렌드를 보여주고 있다.

음원을 무료로 내놓는 시도는 처음이 아니다. 라디오헤드는 2007년 ‘인 레인보즈’ 앨범을 인터넷으로 배포한 뒤 ‘원하는 만큼’ 값을 치르라고 했다. 음원을 공개한 한 달 동안 수백만명이 홈페이지에서 음반을 받았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컴스코어에 따르면 이들 가운데 38%만이 돈을 냈다. 유료 구입자가 낸 돈은 평균 6달러였다.한국에서도 비슷한 시도가 있었다. 지난해 3월 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은 현대카드와 함께 ‘백지수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말 그대로 이들의 디지털 싱글 ‘좋다 말았네’의 가격표를 백지로 내놓은 것. 한 달 동안 3666명이 음원을 내려받았고 총 매출은 357만원이었다. 곡당 구매가격은 976원 수준이었다. 무료로 곡을 받은 사람은 41%로 라디오헤드의 62%보다 낮게 나타났지만 모수가 작아 직접적인 비교는 어렵다.

돈 안 내고 음악 듣기?

음악 시장의 형태는 빠르게 변하고 있다. 전통적인 형태의 음반은 LP에서 카세트테이프로, 다시 CD로 형태만 바꿔가며 20세기를 지배했다. 2000년대 초반 MP3 파일이 새로 등장하면서 음악 시장은 음반에서 음원으로 무게추가 급격하게 기울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무선통신망의 발달로 음원을 내려받을 필요 없이 스트리밍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시간이 지날수록 음악을 찾기 위한 수고는 줄어들고 음악을 듣기 위해 지급해야 하는 비용도 줄어들었다. 가령 한 달에 몇천원을 내면 음원 사이트에 있는 수백만곡의 음악을 마음껏 들을 수 있다. 희귀한 음반을 찾아 레코드 가게를 순회할 필요가 전혀 없다.최근에는 한발 더 나아간 서비스들이 떠오르고 있다. 이른바 ‘스트리밍 라디오’다. 지난해 서비스를 시작한 애플의 ‘아이튠즈 라디오’, 한국 스타트업 비트패킹컴퍼니의 ‘비트’, 삼성전자가 갤럭시 노트4 발표와 함께 선보인 ‘밀크’ 등이다. 이 서비스의 공통점은 돈을 낼 필요가 없고 사용자가 원하는 곡을 선택할 수 없다는 것이다. 대신 선호하는 장르나 시대, 분위기 등을 선택하면 자동으로 재생목록이 만들어진다. 일하거나 공부할 때 배경음악을 찾는 사람이라면 꽤 유용한 서비스다.

음악이 공짜라면 음악은 누가 만드나

라디오헤드와 장기하와 얼굴들 사례처럼 기꺼이 돈을 내고 음악을 듣겠다는 사람은 생각 외로 적어 보인다. 과거 음반이 눈에 보이는 상품이었던 반면 음원은 스마트폰이나 PC 안에만 존재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상품이란 점도 크게 작용하는 것 같다. 불법 사용자들을 합법의 테두리로 끌어들여 수익을 올리려는 플랫폼 사업자의 노력이 무료 스트리밍 라디오 서비스를 낳은 셈이다. 이들은 소비자에게 돈을 받지 않는 대신 광고 등으로 매출을 올린다.이 과정에서 가장 소외된 사람들은 음악을 만드는 뮤지션이 아닐까 싶다. U2 같은 톱스타야 애플에서 돈을 받고 투어 공연으로 수익도 올리겠지만 대다수 뮤지션은 열악한 상황에 처해 있다. 음반에서 음원 다운로드, 음원 스트리밍으로 시장이 바뀌면서 이들이 손에 쥐는 돈도 계속 줄어들고 있다. 이용자들이 공짜로 이용하는 스트리밍 라디오는 운영 기업이 음원사와 계약을 맺고 스트리밍 횟수에 따라 돈을 내고 있다. 최근 왜곡된 음원 유통 구조를 바로잡아야 한다며 ‘바른음원협동조합’을 만든 시나위의 기타리스트 신대철은 “100만명이 음악을 들어도 몇십만원밖에 받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울분을 터뜨렸다. 음악을 듣는 비용은 계속 줄어들고 있지만 이 음악을 만드는 사람들이 없어진다면 어떻게 될지도 한번쯤은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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